"밤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불안이 깊어지는 거지."
석훈은 아직 커피에 혀를 갖다 대지 못한다. 너무 뜨겁기 때문이다.
"열두 시 넘고, 세 시 네 시가 돼도 뜬 눈으로 있어."
"나도 그래."
멀리서부터 축 늘어진 몸으로 다가오던 석훈을 위로하던 창무는 말한다. 그건 자신 또한 그렇다고. 그들은 세 시 카페로 왔다. 길 건너편으로 시장이 보이는 건물 2층에서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기 보다 시장 풍경을 보며 이야기한다. 별로 할 말이 없어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건 불면증이 아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졸음이 몰려오는 것은 어쩌면 그 시간이 다시 오는 일만큼이나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불면증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가진 고통을 드러내기 적절한 단어는 그런 것뿐이었다. 그리고 우울함.
한 달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는, 그러나 그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창무다. 보다 튼튼한 다리인듯 걸어왔으며, 또한 이번에는 석훈이 먼저 창무의 어깨에 손을 툭 올리는 것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석훈은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틀 전이었다.
문 가까운 책상에 앉은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말한다.
"오늘 면접 보기로 했는데요."
서로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석훈 삶의 여섯 번째 애인, 여자. 그러나 그녀가 변호사 김석훈의 삶을 망가트리기 위해 접근한 여자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녀를 돌려보냈을까. 문밖으로 그녀를 내쫓을까. 당신이라면.
늦은 밤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의 몸에 기대어 휘청인다. 맞다. 그건 석훈이다. 아라는 지금 이 순간이 싫지 않다. 그가 술 냄새를 풍겨도, 스스로 나약함을 선택하는 남자여도 그런 그가 싫지 않다. 그것이 연기여도 그럴까.
고아라 인생 일곱 번째 남자, 애인.
"구서동 힐스트리트로 가주세요."
그가 사는 아파트의 이름은 힐스트리트가 아니다. 술에 취해 그런 것이다. 마치 알아들은 듯 다시 묻지도 않는 택시 기사가 대단한 것이다. 거울 속 그런 사람의 모습이 익숙하다.
그래도 그는 변호사다. 꽤 잘 벌지만 최고는 아닌, 그런대로 번듯하지만 턱이 치켜세워질 정도로 꼿꼿하지는 않은. 세 사람은 왜 한 차에 있고 그런 그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가.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