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준 감흥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88년도 영화를 봤지만 더 깊은 영감을 얻고 싶어 한다. 동네 과자점에서 산 리얼 초코쿠키를 두 개나 먹었음에도 달콤함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주인공들의 프로필을 본다. 음악 감독은 누구였으며 촬영지는 어디였는가.
하루는 온종일 유튜브를 보고 있기도 한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어떤 기사에는 댓글까지 단다. 하루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때도 있다. 때론 혼자서 술을 마신다. 편의점에서 세계 맥주를 사기도 하고 하이볼도 직접 제조한다. 책은 보지 않는다. 몇 년째 그런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그것도 중독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왜 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일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선주에게서 온 문자였다.
"금요일에 애들 다 만나기로 했어. 올 거지?"
지애에게서 온 문자였다.
"잘 있냐? 선주 연락 받았지?"
달래에게서 온 전화였다.
"애들 연락 왔어?"
"어, 금요일 날 보기로 했다며?"
수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했지만 설레었다.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취객을 상대하다 팔목을 부러뜨려 합의금을 물게 됐다던 순경 달래의 이야기가 큰 이슈였던 마지막 술자리. 지난해 연말이었다. 거의 십 개월 정도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
금요일이었다.
"선생님."
수영은 횟집 수족관을 보고 있었다. 바닥에 붙은 광어, 낮은 곳을 둥둥 떠다니는 밀치. 그리고 돌돔. 물고기들 사이의 얼굴, 또 다른 얼굴 하나.
"깜짝이야!"
달래는 조심스럽게 나타나 수영을 놀래켰다. 수영은 놀랬다. 달래는 수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수족관 속 물고기들이 조각이 되어 접시 위에 올려졌고 작은 그릇에는 여러가지의 반찬들이 담긴 채 놓여 있다. 네 명의 친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주문은 선주가 했다. 목소리가 가장 큰 건 선주였다. 지애는 주로 젓가락을 놓거나 물을 따르는 일을 했다. 자신은 왜 먼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나 그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직업도 가지지 못했고 가정도 꾸리지 못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수영은 친구들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술을 따르는 건 달래였다.
"진짜?"
달래는 술을 따르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수영은 놀랐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달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그 말이. 가정이 있는 선주와 결혼을 앞둔 지애, 마지막 남은 솔로 둘. 하지만 또 한 명이 결혼을 향해 달려갈 듯 했기에 초조하다.
"뭐하는 남잔데?"
지애는 물었다.
"어디서 만났는데?"
선주는 묻는다. 수영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지애는 니트 소매를 걷어붙이곤 식탁에 몸을 기댔다. 선주는 느긋하게 앉아 홀로 소주잔을 입에 갖다 댔다. 그러자 달래가 잔을 들었다. 수영도 그렇게 한 모금의 소주를 마신다.
"사내 연애 괜찮냐? 난 못하겠던데?"
달래의 새로운 남자 친구는 장 경사였다. 파출소 동료였다.
선주는 광어 두 덩어리를 상추와 깻잎에 싸며 두 친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수영은 괜히 술잔만 입술에 갖다 대며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아래로 떨어뜨린 시선은 밀치 한 점에 젓가락을 갖다 대도록 할 뿐이다. 그러다 가끔 친구들의 표정을 살필 뿐이다.
"파출소도 계속 옮겨 다니는 거지?"
지애는 사내 연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선주는 경사의 위치가 어느 정도에 있는 것인지 순경과 경사는 서로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이모! 저희 매운탕 하나 해주세요."
선주가 매운탕을 주문했고 그들은 지금까지 세 병의 소주를 비워냈다. 한 병을 더 마셨다. 그들은 그곳에서 식중독에 걸리고 만다. 아니, 그들 중 세 명이 회를 먹고 탈이 나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영은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자신만 빼놓고 세 명의 친구가 동시에 그렇게 식중독에 걸리는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수족관 안을 봤어도 말이다. 싱싱해 보이는 물고기들의 헤엄을 지켜봤을 때도 말이다. 문제는 물고기가 아니라 물이었다. 헤엄이 아니라 물살이었다. 수영은 기포를 봤다. 누군가가 그곳에 불순한 기체를 주입했던 걸까. 하지만 그것이 물고기들에 끼치는 영향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