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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Mar 06. 2023

영화화할 수 없는



나는 극적인 장면들을 만들 수 없다. 그릴 수는 있어도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며,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은밀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내 영화속 주인공들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맞다. 나는 소설을 영화처럼 쓴다. 어쩌면 소설이 아닐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려 한다. 나는 대책 없지만 대책 없지 않은 소세이 작가라고.

극적인 전개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에세이처럼 허구를 향한 포부 없는 글도 아닌. 나는 내 글을 그렇게 설명하려 한다. 그냥 그렇다고.

세 번째 소설을 완성시키고, 그러나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내보이기 위해 다시 조금씩 다듬는 중에 어느 순간 이 이야기를 소개할 만한 한 문장을 정했다. 그건 가본 적 없는 평양에 대한 에세이이자, 영화감독이라는 배우의 짧은 여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책을 내어 성공해서 얻는 건 돈과 명예뿐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때로 이문열이고 싶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조차 없고,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는 그러나 내가 그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나일 뿐이고 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결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

나는 '노르웨이의 숲' 팬조차 아니었으며 그의 소설이라고는 서점에서 조금씩 몇 줄 읽어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런 내가 찾은 것은 언제나 영화였고 늘 조금 더 입체적이고 실험적인 무언가를 바랐다. 요즘은 진화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등장하며 곧 인간들이 나와 연기하는 영화를 보지 않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이 세계에서 문학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고 어느 방향일까. 나는 영화화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또한 조금은 치사한 하나의 묘책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야만 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변심한 연인의 모습처럼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조지 밀러 감독의 신작 '3000년의 기다림'을 다운로드하기로 마음먹은 후다. 한동안 소원했던 영화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 화면을 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요즘 주위의 사람들이나 어떤 거리 어떤 장소에서 마주치는 부부들을 보며 그들이 서로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싸움도 많이 할 텐데, 그렇다면 그 사이의 조그만 아이는 평화 유지군인 것일까.

소설과 에세이도 늘 경쟁해야 할 이유가 있듯 분쟁 없는 평화 유지란 없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공식적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에 나오는 새 소식들조차 모두 완전히 믿을만한 것은 없으며 누군가는 공격을 위해 혹은 수비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믿고 사는 것, 또한 내가 보인 하나의 신념이다. 이 사회에서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오직 드러내는 것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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