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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ug 13. 2023

'Le Poinçonneur des Lilas'


https://youtu.be/eWkWCFzkOvU


Porte des Lilas는 파리 동쪽 어딘가 끝에 있는 지하철역 이름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라일락의 문' 정도다. 'Les Lilas'라는 지역으로 통하는 관문인 셈인데 파리의 동서남북으로 그러한 역들이 존재한다. 라일락의 문 역은 파리에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랬다. 1950년대 프랑스 영화에 등장하던 곳이었고 같은 시대에 나온 세르쥬 갱스부르의 그 노래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라는 심장이 움직이도록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부지런히도 움직였을 테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이 역은 파리의 현대 역사를 알게 한다. 처음 파리에 가면 사람들은 놀란다. 역들이 너무 오래되고 더러워서.


그 역을 알게 된 것은 프랑스의 대외정보국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 기관이 어디에 있는지가 문득 궁금했고, 구글에 검색해봐도 나올 리 없었고 이런 저런 사진들을 보고 위치를 찾아내게 된다. 파리 역시 중심부를 벗어나 도시의 끝으로 가면 점차 낭만이 사라지고 차가운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도 낭만은 있다. 보다 현실적인 태도로부터 젖는다. 대외정보국의 건물 마주편에는 군부대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었는데 언제라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듯했다. 마치 그런 분위기 속에 있는 듯했다.



세르쥬 갱스부르의 그 노래는 지하철 개찰원의 치열하고도 무기력한 삶을 다룬다. 그러면서 죽음을 떠올린다. 그곳은 우리나라처럼 습하지는 않아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에어컨이 없는) 열차에 대한 원망도 없고(체념하게 되는) 그럭저럭 살기 좋은 도시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울했고 슬픔에 젖은 모습이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려는 싸움이 치열히도 전개되고, 또 앞을 막아선 자를 노려보는 표범과도 같은 눈들.


거리 곳곳에 집 없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집시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곳. 파리에 대한 낭만이 깨지는 순간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수도 파리에 대한 진짜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유난히도 알제리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그곳에는 알제리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샹젤리에서 울리는 샹송을 떠올린다면 파리는 그저 관광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카림 벤제마는 그런 거리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리옹 출신이었다.



내가 부산에서 왔다고 하면 그들은 마르세유를 말할 것이고. 서울이 그런 곳이었듯, 지구가 어떻게 도는지도 알지 못하며 도시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느꼈다. 새벽부터 밤까지 열차는 움직이고, 밤거리에는 맥주병을 손에 쥐고 다니는 남자들(영국놈들..)로 시끄럽다. 골목 하나만 걸으면 어디선가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을 만날 듯 설레었고, 파리를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에서의 최고 낭만은 카페테라스에 앉아 수다를 떠는 일이었다고.



자주 가던 술집 친구들은 그런 이유로 위층 사람들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진짜 파리의 밤을 느낀 듯했고 종종 술 냄새를 묻혀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다시 열차에 오르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 도시가 출발하기 전으로.



그곳에는 정말 라일락들이 피었을까. 이제는 자동 개찰기가 그의 업무를 대신한다. 그는 더 이상 표에 구멍을 뚫지 않고(그 시대 갬성?) 그렇게 다시 우울에 젖는다.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늘 그랬듯, 내가 지금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오로지 다른 사람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건 그토록 슬픈 일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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