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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Sep 30. 2023

"그건 내 모습이었어"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닌, 진정한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내겐 박근혜를 향한 지난 날의 그에 하는 말과 같이 들렸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을 테다. 그럼에도 정치의 세계는 잔혹하게도 한 사람을 몰아붙이고는 했다. 노무현은 그렇게 스스로 삶의 필름을 끊었고, 사람들은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재명은 먹기를 중단하며 곧 죽을 사람처럼 힘을 잃어갔다. 그때 대통령은 어딘가에서 그의 모습을,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검찰이 조금 무리하게 밀어 붙이지 않나 싶었다. 마치 이번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마음가짐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법원에서 그 의지를 꺽었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또다른 증거들이 사라지는 일이었을까.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달렸다. 진실과 거짓, 양심과 비양심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돌아가리라. 나는 보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진실을 혹은 진짜 거짓을 보지 못한 듯했다.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내 삶이 내 하루가 완벽한 도덕적 의식으로 이루어졌다 확신하지 못한다. 이재명은 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지난 날의 자신으로부터 설정된 그 지점을 넘어서려 시도하고 도전한다. 내가 보아야 할 또 다른 것은 그것의 성공과 실패 여부였다. 물론 나는 내가 아닌 그 누구의 편도 아님을 분명히 하려 한다. 

레드의 심정으로 블루의 심정을 느끼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늘 상대를 꺾고 싶고 이기려 들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는 아직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이건 승부, 게임이기도 했다. 플뢰레, 에페, 사브르로 구분되는 싸움처럼, 발을 휘두르는 마치 검술과도 같은 화려한 맨손 싸움 태권도처럼.



우리는 싸운다. 그러나 실제 피를 보지는 않는다. 국회 같은 곳에서 몸싸움을 하다 그들의 셔츠가 찢어지는 일은 있었을지도. 그들은 항상 대척점에 서야지만 싸울 수 있었다. 링은 더 이상 정사각형뿐이 아니고,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이 원을 그리기를 원한다.

더 이상은 내가 누구와 싸우는지도 알지 못하는. 그러다 마주치는, 그리고 상대하는 얼굴이 너무도 낯이 익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으리라. 호구를 뒤집어써도 알아볼 테고 그렇게 타깃을 잃을 것처럼 두 눈동자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침착할 것이다. 그러기를 원하며 버티고 싸울 것이다. 어느 날 언젠가 링 위에 쓰러진 내 모습을 보게 될는지..

승리할 그날을 위하여. 펄럭이는 깃발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 앞에는 너무도 많은 적이 있어 두렵기만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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