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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16. 2023

'Poor Things'


'투신한 성인 여성의 시체와 태아의 두뇌가 결합하여 탄생한 유일무이한 피조물 벨라 백스터'


앨라스데어 그레이의 소설 'Poor things'는 그러한 캐릭터가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갓 태어난 얼마 안 된 머리와 꽤 살다 스스로 멈추도록 한 몸이 하나 된 것 피조물이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여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 얼마 전 그의 새 영화 예고편을 봤는데 배우 엠마 스톤이 막 뛰어다니고 하길래 무슨 스토리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엉뚱하고도 이상한 행동을 해 뭔 짓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 문장을 읽고는 이해가 됐다.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만 인간 행동은 절대 그런 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다 큰 나는 내 눈으로는 다 큰 여자가 그러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라면, 그 속에 든 뇌라면.

그들은 그 머리로 세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5살 이전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나는 그때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난 다섯 살 때 큰 수술을 해 그때부터의 일은 희미한 조각처럼 부분적으로 떠오르고는 한다. 그전의 일들은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갈 때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니 내가 점점 나빠진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가 그런 식으로 자라는 걸 보면 그런 시선 그런 눈으로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내 가족이 늘 친근하거나 익숙하게 여겨지는 걸 보면 나는 분명 그전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는 것. 가족에 대한 생각은 점점 변하고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크게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다시 그들을 찾고는 했다. 그런 내 생각과 내 머리 속 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벨라 백스터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싶고는 하다. 아직 그 영화 소설을 읽고 보지 않았지만.



그때의 몸과 눈이면 걱정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하는 삶.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오늘 하루는 버틸만했다. 어차피 나는 내일 일어날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니 말이다. 누구를 알려 하기보다, 다다른 결론이 결국 그거다 싶으면 그렇게 또 잊어버리는 일. 잊은 척 사는 것.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여운 것일까 아니면 그런 내가 가여운 것일까.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많은 힘을 들여야 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들을 일일이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다 알지 못해도 오늘 하루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까지는 가야 했다. 어제의 일을 잊지 못하는 삶은 늘 피곤했으니.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으면 만성피로가 되고는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늙어온 것이 내가 보는 어른의 모습일까. 그런 뜻에서는 난 가여운 것을 사랑한다. 머리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으로는 모두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영화로 건축을 한다 표현한 적이 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스케치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그의 창조는 점점 큰 건축물이 되어만 간다. 아파트 모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엠마 스톤은 현재 세계에서 최고라 불리는 여배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주거지가 주는 행복도 있을 수 있음을.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위안을 얻게 되는 곳은 오직 집 뿐임을. 오늘, 그곳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다. 그토록 위험하고도 아찔한 높이에서 자라나게 되는, 또 하나의 가여운.


https://youtu.be/RlbR5N6veqw?si=-WIqFD1gtgFKm_V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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