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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Dec 03. 2023

나는 나를 알릴 권리가 있다


그 책임을 감당하기는 힘들지만.


21년 봄, 나는 장산역 부근에 있는 국회의원 하태경 사무실을 찾아갔다. 새 책을 냈고 홍보를 위해서였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 미얀마인 여성이 한국에 불법 취업해 그곳에서 몇 년을 지낸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만든 이야기였다. 주인공 이름은 수자였고 그를 만나게 되는 한국 남자의 이름은 태경이었다. 하태경,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부산의 한 지역구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그보다는 유력 정치인이 내 책을 읽어주면 그것이 홍보 효과가 생길 거라 믿었다. 늘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게 하나의 방식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건 결국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 써서 뭐하나, 가 아니라 나는 글을 써야만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또 잊은 듯했다. 내가 이 사회에 살며 자신감을 얻게 된 힘은 그것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내가 글을 쓰는지 모른다. 지하철 버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볼는지. 그래서 더 지독한 고독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말이다. 

나는 국민의힘 선거 유세장을 몇 번 드나들며 정치인의 지위 또는 입지를 느끼게 됐다. 그들은 늘 사람들 앞에 서야 하며 그래서 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 했다. 인파들 사이에 머리를 드러내보이는 건 오직 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존 F. 케네디처럼 암살당할 수도 있다. 지금 세상은 많이 변해 정치인의 인권도 경시할 수 없게 됐지만, 그래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단상에 선 그들 옆머리에 나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요즘 유세장은 차라리 콘서트장에 가깝고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나 과격 지지자들 사이를 지나는 그들 몸이 다소간 움츠러들어 있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순진했던 건지 나는 사무실에 가면 그가 있고 그래서 그 얼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없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짐작했다. 아무튼 나는 낯선 건물에 들어가 낯선 복도를 지나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어떤 여자가 문을 열었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면 무슨 일 때문에 오셨죠?

"어떻게 오셨죠?"

걸어 지하철을 타고.

나는 당황했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다. 책 한 권을 손에 쥔 채로 그것을 들어 보이며, 그러자 그 여자는 더욱 차가운 얼굴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곧장 문을 닫으려는 듯도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희 학교 선배님이시고, 주인공 이름도 하태경이거든요 하며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한 번 읽어봐주셨으면 해서.

"한 번 읽어보시라고."

"차 한 잔 하시겠어요?"

그 아줌마는 곧 미소를 지으며 나를 따뜻하게 대한다. 돌아갈 때는 읽어보라며 하태경 의원이 과거에 쓴 책 한 권을 건네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신우라는 이름이 그에게로 전해졌을 것은 분명하다.

그 즈음 나는 정치를 한다는 포부를 가지기도 했기에 의미 있는 걸음이었다. 아무 뜻 없는 걸음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해도 서울로 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무척 슬프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고, 되려 그는 이제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정치하겠다며 선언하듯 외쳤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더 크게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늘 이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 것이다. 서울이라는 심장이 더 단단하고 강해질 수 있다면.

그가 다시 책 한 권을 냈고 국민의힘 전 대표 이준석은 그런 멋진 문장을 남겼다.

'그가 더 담대한 도전을 위해 따뜻한 부산을 떠나 수도권에서 정치하겠다며 용감한 첫 번째 펭귄이 되었다.'

책은 한 인간의 머릿속 생각과 가슴속 감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멋진 것. 나는 그게 더 아름답거나 멋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개발서처럼 잘 되기 위한 법칙들을 나열하는 것이 무슨 의미 있나 하면서도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처럼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이야기일 뿐인데 남 잘 되게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도인가도 생각한다. 그도 자기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점점 하태경이라는 이름보다는 크루, 그 무리들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구상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물론 정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정보를 얻고 싶기도 하다.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문장 한 줄을 그을 때 그건 누구의 솜씨인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뒷이야기들도 있었다. 국회 근처 한 식당에 들어가 그들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의지 또한 크다. 안철수씨 조용히 좀 하세요! 그런 소리도 들어보고.

'어느 출동형 국회의원의 의정 분투기'. 내가 그 문장을 읽고 밝히는 소감이다. 자비출판을 통해 책을 냈어도 나는 그런 것이 출판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프랑스에서 차별 받은 적이 없는데 그런 뉘앙스로 책을 설명해 싫기도 했다. 아무튼 크게 상관 없는 일이고 나는 그들이 하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안다 할 수 있다. 책 사는 일을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건 분명 경제적인 일이다. 정치와 경제는 늘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예술은 조금 다르지만. 그건 아직도 철없고 여전히 부질없는 일 같지만. 그러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들이 나를 살게 한다면 얼마든지..



https://youtu.be/QQPJYnr48yU?si=fFJRQ3jwEPeYS6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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