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택시운전사'였다. 미뤄두었던 것이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의도가 그런 식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영화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야기는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도로를 달리다 데모하는 학생들과 대치하는 경찰들로 인해 차를 돌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다 잠시 뒤 접촉 사고가 발생하는데 하필 그 시점에 임산부를 부축한 남자가 택시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달려온다. 택시운전사는 그들을 태운 채 빠른 속력으로 달려 병원으로 향하지만 다시 경찰들이 세워 놓은 벽 앞에 멈춰선다. 데모하는 학생들과 그걸 막는 경찰들의 싸움이 민주주의의 시대를 앞당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어나야 할 새로운 아이가 있다. 더 이상은 시간을 끌고 지체할 수 없다. 잠시 그 싸움을 멈춰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다시 싸우더라도 말이다.
일본으로 배경이 전환된 뒤 토마스 크레취만이 등장한다. 그는 독일 언론 ARD의 기자 위르겐으로 분했고 그는 다른 나라의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한국에 있다 온 BBC 기자에게서 그곳의 현재 상황을 전해 듣게 된다. 그 장면에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마치 전 세계에 생중계돼야 할 중요한 스포츠 시합인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알려야 하고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은 그저 골라야 하는 하나의 방송에 불과한 것. 거기는 지금 분위기 살벌하다는 말에 한국의 현 상황을 궁금해하는 위르겐.
처음 자리에 앉아 하는 이야기는 기자가 편한 곳에 있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대사였다. 무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앉아 일본에서의 지금 생활을 암시했다. 하지만 광주의 심각한 분위기를 전해 듣고는 이끌린다. 기자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시합을, 아니 기사를 보게 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에서의 상황이나 그런 것은 짧게 다뤄지고 그 부분에 대한 묘사들은 세밀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꽤 갑작스럽다. 그런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것도 갑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풀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앞뒤 상황을 잘라내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위르겐 힌츠페터에게는 언론인을 넘은 인간으로서의 어떠한 사명감이 있지 않았을까.
518이 한창일 때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을 사살한 김재규의 사형이 확정되었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걸린 시간 또한 단 사흘에 불과했다. 나는 이 일을 조금 왜곡해서 보겠다. 역사를 조금 굴절시켜 볼 때 인간 내면의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최대한 조용히 없애기 위해 광주를 집단 구타한 것이 아니었나. 위르겐이 서울에서 처음 한국인 기자를 만나 전해 들었던 말은 김재규 재판으로 언론의 관심은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주는 철저하게 봉쇄되어 그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는가. 그에게 김재규는 어떤 존재였을까.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넘어야 할 벽이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를 밟고 올라섰다는 사실을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가린 것은 아니었나.
김재규는 전두환과 약간 비슷한 캐릭터이면서도 조금 달랐던 차지철과는 또 다른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런 차지철은 김재규가 보내줬다. 보다 민주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을 김재규. 전두환은 터프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쁨을 받았던 것도 권투 경기를 함께 볼 때 옆에서 해설을 맛깔나게 잘해서였다는 썰이 있다. 때론 그런 사람들이 더 이성적이다. 그들이 더 이성적일 때가 있다. 김재규는 박정희라는 사람에게 감정적이었다고 본다. 각하 면전에서 쓴소리를 하는 등 몇몇 영화에서는 눈치 없는 사람처럼 비치기도 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조금 과하다 싶었다.
사람들은 그 독일인 기자에게서 위로를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전세계에 알려진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 미국 같은 국가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그런 것을 앞장서 막을 수는 없었다. 상황을 지켜본 뒤 조심스럽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금 그 시절의 광주에 네이비 씰을 보내 학살범들을 암살하거나 처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국가 사람들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주위에는 늘 절대 강자들이 있었다. 항상 열등감을 느끼며 살고 또 그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릴 때는 러시아가 나서주기를 바랐다. 철없는 생각으로 공산주의 국가들을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민주주의라고 다를 건 없었으니까. 성인이 되니 어른들이라고 별로 다를 건 없더라. 내가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게 다른 존재로 느껴질까. 희망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많은 관객들이 택시운전사 영화에서 엄태구가 한 연기에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큰 감동을 받았다. 샛길 없는 세상이 있을까. 누군가 눈 감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학생들의 운동이 단지 현실에서 달아나기 위한 조그만 구멍이었다면. 그 길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면. 다시 만나 그들과 나는 다시 또 싸워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