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나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이 장 봐 온 비닐봉지에 박스에 엉덩이를 몇 번이나 얻어맞는다. 몇십 초 동안은 아예 그 샤인머스캣 박스에 엉덩이가 짓눌린 채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참 힘들었다. 장안동으로 왔다. 듀펠센터로 가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난 왜 파리에서 퐁피두 센터를 사랑했는지 깨달을 듯했다. 나도 이런 집 건물 방을 가지고 싶다는 꿈이 다시 한번 치밀어 오를 듯했다. 그 공간은 꼭 셰익스피어 책방처럼...
퐁피두 센터는 파리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보다는 보다 혁신적인 구조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게 그곳을 잘 표현하는 말일지 모른다. 그 도시에는 아주 늙은 건물들이 많고 도시의 상징적 구조물인 에펠 탑 역시 19세기 말에 지어진 것이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그곳에서 배운 건 새로 만들고 지은 것만이 혁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차도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래도 인간 본성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을 봤다.
디자이너 안태옥의 옷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옷을 찾다 보니 그런 것이었다. 서울에는 장안동 같은 곳도 있었다. 장한평이나 뭐 좀 헷갈리기는 한데 그 정도 지역은 대충 그랬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제기동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야 했는데.
잠깐 카페에 들렀는데 3000원짜리 에스프레소 팔면서 설탕 스푼도 안 주는 가게가 그곳에는 있었다. 그 분위기가 난 좋았다. 아직 최고는 아니지만 언제 또 최고가 될지 모르는 가게들이 있는 도시. 그게 서울의 진짜 저변일지 모른다.
동네 오래된 건물을 바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듀펠센터는 1층은 콘반이라는 식당, 2층은 디자이너가 수집한 듯한 옷들이 있고 3층이 그가 만든 옷들이 책들처럼 꽂혀 여기저기 걸린 곳이었다. 그곳 한편에 놓인 허리띠를 사고 싶었는데.
그 벨트는 꽤 오래 눈여겨보던 인터넷 사이트에선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저런 벨트를 해?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게 디자이너의 그 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난 그 벨트에 끌렸다. 직접 보고 만지니 또 달랐는데 돈이 모자라 사지 못했다. 작년, 그러면서 90만원에 가까운 코트 한 벌을 구매한 것이었다. 엄마는 그 벨트를 보고 마냥 웃더라.
서울은 역시 종로라는 게 내 변치 않는 주장인데 이번에는 또 달랐다. 이젠 진짜 런던으로 갈 필요 없겠다 말할 정도였으니. 세계적인 도시들에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오랜 것과 새로운 것들이 조화를 잘 이룬다는 것이었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항상 궁이 있고.
그 주위 어딘가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교 같은 곳이 더 드라마틱한 건 무엇 때문일까. 덕성여중 덕성여고 앞을 지날 때는 마치 새로운 이야기라도 지을 듯이 설렜다. 놀라운 건 등교길 아이들의 모습이 다른 어느 학교 고등학생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 날 아침 우연히 약수역으로 왔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두 줄로 선 자들을 보다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두 칸 있는 화장실에 모두 변비 걸린 자들이 앉은 듯 줄이 줄지 않는 모습에 그저 웃음만 나오는 것이었다. 그게 서울의 저력일까. 그건 분명 위태롭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느낄 듯했다.
국회도 갔다 왔다. 싸우는 안철수와 이준석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 길 내내 너무 매력적인 도시 정말 어마어마한 도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The Hyundai라는 글자를 보고 무작정 그곳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젠 감히 신세계보다 더현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퐁피두 센터를 공동 설계한 자의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그 기분이 진실이었을 거라는 희망에 젖고야 만다. 그 옛날의 파리 백화점의 구조 형태도 보이면서 아주 현대적이고 멋진 구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정말 현대였다.
여의도로 오기 전, 이태원의 그 슬퍼진 골목을 걷다 20대의 어느 날들이 그려졌다. 그 예쁜 길들이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장소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지. 그리 달라질 수 있는지.
해밀톤 호텔의 그 글자들을 보다 내가 굳이 워싱턴을 워싱톤으로 표기하고 싶었던 이유를 찾은 듯도 하고. 이태원은 좀 그렇다. 정말 매력적인 동네이지만 아주 어둡기도 하고 기분이 그렇다. 20대에 난 꼭 그랬던 것 같다. 꼭 말하고 싶은 건 20대의 어둠은 빛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여전히 위험한 시기이기도 한.
이 도시에 애초에 안전한 곳이란 없었다는 걸. 굴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그럼에도.
https://youtu.be/9ipa419ffS0?si=CR3dh-_k0cITiV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