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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13. 2024

두 얼굴

2024 10 13


 단단히도 고정됐던 머리카락마저 힘을 잃고 하나씩 떨구어질 정도로 흐트러진 그 모습은.

 한 병의 술을 모두 비웠을 즈음 그가 한 말이었다. 또 다른 주말 밤, 그때 지도자 동지는 나보다 먼저 취해 혀 꼬인 채 말했다.

 그건 4년 전의 일이었다. 저고리를 걸친 여성들이 땅에 닿은 비행기 앞에서 꽃을 든 채 두 팔 흔들 때였다.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두 발 구두, 그리고 높은 굽의 신을 신은 한 여자의 걸음을 맞이하며.

 그때 그들을 향해 열렬히도 환호하던 그들 모습을 난 잊지 못했다.

 지도자 동지의 입은 더욱 느려진 언어를 말했으며, 그 순간 그는 남쪽의 지도자가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이야기한다.

 두 손 모아 깍지를 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그 모습이. 그가 꺼낸 이야기는 전기를 팔라는 것이었다 한다.

 2018년 열린 정상회담은 무려 11년 만에 이루어진 양측 정상 간의 만남이었다. 그때 그는 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하며, 원자력발전소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의 대통령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댄 그 모습은.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웃었고 또 몇 초 동안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했다. 그 모습 그 장면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음을. 국민과 인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

 언론 기자들은 치열하게 자리 다툼을 하며, 앞서 그들이 가운데에 서도록 하거나 미소 짓도록 만든다. 그들이 보길 원하는 건 그런 것이었다. 무려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랬던 걸.

 "그것이 애증의 감정일 거라고도 했죠."

 그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기기 전원은 꺼져있어야만 했음을.

 "날 서울로 초대하고 싶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앞이 캄캄했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볼까, 저 시선들에 둘러 싸일까."

 극장 한 편에 앉은 듯 난 그가 하는 연기를 때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는 했던 것이다.

 경호원을 두는 이유일 테니. 그들은 커야 했고 그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시선을 제압할 만한 몸이어야 했던 것을. 군중 시선의 조준점이 그 머리를 향할 때 그는 더 살 방법이 없음을.

 그들 눈은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사이 숨겨진 총을 찾으려 하며, 그렇지만 지도자 동지는 서울로 오는 차에도 비행기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읽히는 것이었다. 그 얼굴 위에는 그런 글자들이 적혀 있어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을 듯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유독 턱을 만졌고, 그의 앞에 앉은 대통령이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걸 TV로 봐 와 알고 있었다.

 그가 왼쪽으로 기대 앉는 습관을 알게 됐고, 그렇기에 난 지도자 동지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걸 알았으며, 집으로 와 소파에 앉은 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는 한 남자의 표정을 기어이 떠올리려 했던 것이다.

 그의 말을 흉내내고 따라하기라도 할 듯, 하지만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주위 환경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벽을 타고 이어진 장치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혼잣말은 정신병 같은 것임에도. 난 그 정도로 괴롭지 않고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였음을. 그럼에도 이따금 충동적인 결심을 할 것 같이, 총을 쥔 그 손이 제 머리를 겨누는 모습을 스스로 떠올리고야 만다.

 "당신을 서울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 말이 귓가를 맴돈다. 반복해서 들어 지워지지 않는 노랫말처럼 그 주위에 머물렀다.

 마치 맨해튼 계획에 푹 빠진 사람처럼, 그는 그 꿈을 위해 모인 자들을 우러러본 게 아니었을까.

 그 표정을 떠올린다. 당신은 아직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자신을 향해 그런 말을 하던 그를 향한 눈빛 시선을 떠올린다. 전기 만드는 일은 낭만적일 수 없으며, 폭발하지 못할 인내를 감춰두는 건 추락하는 몸을 지켜보는 일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을.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웃어넘기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 같았죠."

 그 말 끝은, 점점 좁아지는 길에 놓인 듯 그는. 

 그는 힘이 아닌 불에 더 강한 애착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깨우친 것이라면.

 그런 그를 다시 설계할 수도, 그 생각을 뜯어고치거나 바꿀 사람 또한 없다는 걸 난 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난 그리 답할 테다.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지도자 동지를 서울에서 보게 될 날이 올 지. 먼발치에서 그를 보다 눈을 마주치고는 모른 채 고개 돌릴 날이 언젠가는.

 그래도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자를 그 존재를 알게 되고 만다.


 그날 난 김영철 동지를 봤다.




https://youtu.be/7kr1IXHMUrc?si=V-CgPiccFT6lVV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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