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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18. 2024

두 얼굴

2024 10 18


 "동지가 오셨는데 인사도 못했소."

 그 모습이 내게 왔고 인사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지도자 동지는 내게 장은호라는 자를 만나게 했는데 처음부터 난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영화 제작을 총지휘할 것이라 했다.

 "잘 해보십시오."

 그런 늙은 무책임한 얼굴이란.

 가까이 다가오면 유혹적인 말을 하고 멀어지고 난 후엔 수수방관하기만 했던. 그는 그런 자였으니. 장은호의 그런 면모를 알게 되면서 난 그 모든 게 싫어진 게 아니었는지. 처음 그 감정을 정확히 떠올릴 수 없음을.

 저런 얼간이 같은.. 그런 말을 되뇌기 시작했을 때 난 이미.

 지도자 동지가 자리를 뜬 후 그의 행동 말투는 어딘지 달라졌고 소파에 등을 붙인 그는 혼자 지껄였다. 눈꼬리는 처져 그 눈은 마치 감길 듯했으며 그 얼굴을 볼 때면 피로를 느꼈다.

 월요일 정오에 오고 간 대화, 그곳에서 난 그와 소용 없는 이야기만 나눴다. 오로지 그 입을 대신할 뿐, 자기 생각이 아닌 지도자 동지 생각을 옮겨 적은 종이 위 글자들을 읽듯 그는.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에 더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온다. 라 부장을 찾는다. 건물 한 가운데로 난 계단을 내려오며, 그 순간 그가 입구 쪽에 서 있는 걸 봤지만.

 마지막 계단 끝에서였던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둥글고 큰 기둥 옆에 선 한 남자가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그 얼굴이 낯이 익었음에도 아는 척하지 못했던 건.

 그건 그가 먼저 손을 내민 이유 때문이었음을.

 "어떻게 지낼만하시오?"

 그가 내게 말한다. 복도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 그의 말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이곳으로 오는 걸 짐작했던 듯, 난 알지 못했지만 그는 모두 지켜본 듯 말이다. 그럭저럭 지낼했음에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할 만큼 난 뻔뻔하지 못했는데.

 "영화를 잘 만드셔야 합니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테니 말이오."

 처음 보는 사람에 내 이념을 드러낼 만큼 그는 낯이 두꺼운 자이기도 했을 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봤던 것과 그는 조금 다른 얼굴이었으며, 얼굴 뺨에는 기미들이 선명했고 주름도 그 선이 깊었다. 그에게서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 울림을 떠올릴 듯하지만, 그렇지만 그곳에 머무르던 소리들이 잘 기억나지 않음을.

 그의 안경 저 너머로 라 부장의 꼿꼿한 모습이 희미한 듯 비치고 있었으며.

 "여긴 실로비키 같은 자들로 득실대는 곳이오.”

  그런 말을 했던지.

 “보호받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이곳이 정말 견디기 힘든 곳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오."

 그 대화는 그토록 짧았기에.

 그 모습이 시선 속에서 사라지고. 허무한 듯 난 그 자리에 멈춰 섰으며,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는데도 그 기운이 아직 등 뒤에서 머무르는 듯했다. 언제라도 다시 돌아볼 것처럼, 그렇게 난 라 부장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때는 이곳이 견디기 힘든 곳이 될 테니 말이오.'

 내게 들이닥칠 일의 경고는 깜빡거림 없이 옮겨 갈 신호등의 빨간 불과 같을지. 그 말은 다시 한번 내 걸음을 멈춰 세우고야 마는데.

 그는 내게 주위를 살피라 했고 난 건물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지만.

 라 부장은 멈춰 그런 내 모습을 뒤돌아 확인한다.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듯 난 다시 걷는다.



 Coup d'état



 평양 내에 현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불순한 집단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곧 군대를 움직여 이 도시를 장악할 자들이 숨을 죽인 채로 그 순간을 기다린다.

 어떤 눈에도 포착되고 들키지 않은 채, 그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음에도. 들려오는 이야기마저 잊은 듯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그 이야기들이 구름처럼 그들 머리 위를 떠돈다.

 "당내에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남쪽으로, 아니 먼저 미국으로 일본으로 새 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 않소?"

 외딴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걸 비추고 난 그곳에 음모가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은 모여 머리 맞대어 고뇌할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소문을 퍼뜨린 자는 누구였을까. 곧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 그 이야기는.

 집 거실에서 영화를 보게 해달라 부장에 부탁했고, 식탁 의자를 객석 삼아 최근 3년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을 거의 다 봤는데.

 여섯 번째 영화였던가, 그렇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며칠 째였는지, 그 모든 영상의 색감 질감조차 구분 짓지 못할 듯 눈이 감기고 흐려질 때 불현듯 한 남자가 시선 속에 들어왔으며 그가 하는 말들이 귀속으로 또렷이 전달돼 왔다.

 몇 줄의 문장을 종이 위에 그리듯 적는다. 그 위 글자들이 세상을 떠돌 때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할 테니.

 난 그를 만나보고 싶다 했고 섭외할 의사를 전했다. 영화감독의 삶은 늘 불안하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며 세상은 곧 변화를 맞이할 테다. 소문을 쫓는 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땐 눈이 부시며.

 2014년의 어지러움은 아직도 가끔 머릿속을 맴돌고, 그때 난 내게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큰 불빛 하나가 머릿속을 옮겨 다니는 듯했고 스스로 제 머리를 지탱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건 병이 아니었고,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수면 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배우들의 입은 말을 하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찻잔을 들거나 또는 계단을 걸어 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높은 빌딩들이 들어선 려명거리를 비추면서..

 이 도시에 쿠데타를 노리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다. 762대학 출신의 몇몇 엘리트들이 이 체제의 전환을 노린다.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의 처음 얼굴은 그랬는데.

 지도자 동지는, 그의 한쪽 입 꼬리는 올라갔으며.

 "하하하"

 끝내 그렇게 웃음 짓고 마는 그였는데.

 "당원 동지들의 반발을 견디실 수 있겠습니까?"

 난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이곳에서의 내 삶 역시 불안할까. 매일 집 문 앞을 염려하며 어두운 밤 창문 너머를 걱정하는 신세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인데, 이 땅에서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운명을 정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었으니. 손에 쥔 카드를, 누군가가 그 그림에 맞춰 날 그곳 세계로 안내할 뿐이었던 것을.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당원들의 원성 핍박에도 굴하지 않으리라. 영화를 만드는 건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지는 일, 조그만 물결이라도 일으키려는 이니 말이다. 그들에 맞서 싸울 용기가 아니라 이렇게 사라질 운명에 대항하는 것일 테니.

 나라면 그리 말할 것이다. 내가 그 영화 속 주인공, 반란의 주도자라면 말이다. 모두 잊으라며, 그리고 떠나라고. 난 그를 비행기에 태워 아주 먼 곳으로 보낼 계획을 세울 것이다.


 늦은 밤 땅 위에 부딪히는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문 앞으로 서성대는 그림자조차 어른거리지 않았으며, 이웃이라곤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은 나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남녘에서 온 영화감독에 대해 그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영화를 완성시키면 모두가 알아보는 사람이 돼 있을지도. 어떤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될지. 내게 인민들은 너무 먼 곳에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도 갈 곳 없고 만날 사람 없다.

 집 주위에는 무성한 잡초들만이 자랐고 그저 여길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음을.

 번성한 거리를 걷거나 또 문화를 찾아 떠나는 일만이 유일한 낙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 엔도 료를 인민문화궁전에서 봤을 때 난 크게 감명했고 흔들리고야 만다. 봄의 어느 날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벚나무처럼 서 있다 사라진 그 모습을.

 그곳에서 그를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 중앙사진 전람회에서 우리가 다시 마주치게 될 걸 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를 본 게 거의 4년 만이었다. 논의 한가운데에서 밀짚 모자를 쓴 채 웃는 영웅, 독재자의 사진 앞으로 다가설 때, 내가 막 그곳을 거닐며 그들 예술을 느낄 때 그는 그곳을 벗어나려던 찰나였다. 문을 지나던, 끝내 바깥으로 몸을 옮기던 그 모습을 난 지켜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고개 떨어뜨린 채 자신의 두 발을 보던, 그렇게 사라져버린 그 모습을.

 2017년 겨울 우린 남포동의 어느 거리에 있었다.

 "대학생 때 그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길을 함께 걸었다. 난 그를 만난 적 있었다. '일주일 간의 히로시' 출판 기념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가 마지막으로 부산을 방문했고 그건 내가 써보낸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소설가의 눈엔 그 편지 속 글자들이 어떻게 읽혔을지 궁금했다. 어떤 모양으로 비치고 보여 머릿속으로 옮겨졌을지.

 "저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단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우린 자신을 I 그리고 당신을 You 라 했다. 그건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니었던가.

 더 나은 선택지란 없었음을.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난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단어들 문장 구조로 한 페이지를 채웠음에도.

 몇 개월이 지나 내 옆에 있던 그 모습이. 가짜 시계들이 널린 곳 앞이었나. 그곳에서 난 그렇게 말했다. 그 시절 당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는 그 이야기를 말이다.

 이곳은 봄, 그리고 평양이다. 그때 우린, 골목마다 펄럭이는 옷 냄새가 나고 어떤 길에서는 만두 지지는 냄새가 진동하던 곳에서.

 그의 이야기에는 늘 유머가 있는데 그 옆모습은 이제 사람들을 웃게 할 힘을 잃은 듯했다. 축 늘어진 니트와 셔츠를 즐겨 입던 그 모습이 이젠 이 사회에 어울릴만한 모습 옷차림을 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모습을 보며, 그 뒤를 따르는 한 명의 남자를 봤을 때 그래도 우리가 성공했구나 생각 들었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다른 사람을 보는 일, 그건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었음을. 지난 날의 날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 내 하루의 끝은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시계가 2시를 가리켜도 불을 끄지 않고 글을 쓴다. 그는 늘 따라 걷게 했다. 난 이끌리듯 으며, 그가 만들어낸 문장들을 흉내 내려 무언가를 끄적였고 그처럼 누군가를 쫓고 나중에는 배신도 한다. 그게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었음을 난 알지 못했지만.

 쫓아나가 그를 부를 수도 있었는데 내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다. 그 모습을 바라볼 뿐 난 그를 부르거나 멈춰 세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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