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맨

by 문윤범


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호텔 같은 곳에 취업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전공도 관광일본어과를 택했지만 헛된 꿈일 뿐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때깔 좋고 뭔가 그럴듯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호텔 문 앞에만 서 있기에는 내 재능이 아깝다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 꿈은 호텔 도어맨이었다.

매일경제 출신 기자가 차린 회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을 모집했다. 영상 기사를 제공하는 일이었는데 회사는 서울에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영상을 찍어 보내오면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추려 포털 사이트에 올리는 식이었다. 간단한 서류 전형에 통과하고 카메라를 받기 위해 서울로 갔는데 회사는 반포동에 있었다. 그때가 2006년이었다. 마침 서래마을 영아 살해 유기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기에 궁금했다. 몇 시간 일찍 도착해 그곳 주위를 맴돌았다. 길 가던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서래마을이 어디냐고 물었다. 카메라를 받으러 간 건지 추적 60분 놀이를 하러 간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난 그곳에 가기 전에 미스터리함을 떠올렸다. 그런데 무슨 동네에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분위기 좋아 보이는 상점들도 많은지 신기하기도 했다.

면접 시간이 되어 다시 회사를 찾았고 그곳에서 대표를 만났다. 면접이라고 해봐야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수준의 대화들이 오고 갔을 뿐이다. 방금 나간 저 친구는 마산에서 왔다며 그는 부산과 마산이 잘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받고 작동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난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었는데 그는 나를 향해 센 녀석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난 어떤 것들이 기삿거리가 될만한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잠깐 서래마을을 돌아다닌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다. 매우 서울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조금은 이국적이기도 했던 분위기.

난 그 사건이 궁금했다기 보다 그 동네의 분위기가 궁금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이고 냉장고에 유기했다는 것은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 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분 걸어 나와 만난 큰 도로에는 정말로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대로변 큰 감자탕 집 앞에 밴 한 대가 세워져 있어 안을 들여다봤더니 프로 게이머들이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난 내가 몇 년 뒤에 프랑스에 유학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부산에 e-sports arena가 생길 거라는 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스쳐 지나간 촉과 같았다. 그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 어디에 꽂힐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난 화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난 그 사건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라 사건 뒤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었던 일이다. 부산으로 돌아오니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회사의 대표는 내게 나름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내가 찍는 영상들은 단편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림들 뿐이었다. 그래도 부산대 앞 케밥집에 불쑥 찾아가 주방을 좀 보여주면 안되겠냐 말하고 식당 손님들을 인터뷰하는 등 낯 두꺼운 짓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사장이 케밥 하나를 맛 보라며 포장을 해주기도 했다. 케밥은 그냥 파리에서 먹기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할 때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에 협찬한 옷을 사진 찍어 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공연장에 가서 감성 사진을 찍어 오는 등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는 꼭 호텔 같은 곳이었다. 누구도 그 호텔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방 안에서 벌어지는 그 수많은 짓거리들을 알지 못하지 않는가. 내 꿈은 신라호텔 도어맨이 되는 것이었다. 진짜 서울의 호텔에 취업해 그곳에서 살게 됐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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