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가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건 일 년 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곤 했던 나를 이제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 더 이상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계좌번호 하나만을 남기고 떠났다. 1억 3천6백70만 원이라는 돈은 나를 잠시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교도소를 처음 나와 7000원짜리 해장국을 먹었고, 일주일 동안 묵을 모텔비를 지불하기 위해 35만 원을 썼으며, 걸쳐 입을 옷 한 벌을 장만하기 위해 42만 원을 지출했다. 폴리에스터 안감과 나일론 충전제, 솜털과 깃털로 채워진 파카. 10월인데 겨울 같은 날씨다.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7년을 그곳에 머물러야 했나. 죄의식을 소멸시키기 위한 원망처럼 읽히지는 않기를. 피해자에 대한 죄스러움을 없애기 위해 그 죄를 불태우고자 하는 의식 같은 것은 아니기를 원한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왜 그곳에 있어야만 했나. 감옥 문은 왜 7년 만에 다시 열려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나. 나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나오면 뭐할 거야?"
"글쎄."
나는 어떻게 살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왜냐면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주는 계좌번호를 알려주곤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수영이 찾아와 그의 소식을 알렸다.
"바깥에 나오면 동주 씨를 볼 수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바깥에 나오면 동주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릴 수 없는 장면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를 그의 모습으로 착각해 말을 거는 장면을 상상을 해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본다. 창가 바에는 홀로 앉은 여자의 뒷모습이 있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갖다 댄다.
술을 마셨다. 술집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 맥주 병들을 비워낸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술집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시대가 어느 정도 바뀌었음을 알려 주는 듯했다.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라임이며 플로우며. 비트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안에서 그 가수의 소식을 접했다. 그가 7년 만에 낸 신곡이었다. 술집의 분위기는 마치 지하의 클럽과도 같았다.
로덴 바흐 그랑크루. 어젯밤 마신 술의 이름이다. 병에 적혀 있던 글자들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한다. 눈을 뜨니 모텔이었다. 1주일 동안의 집. 내 집에는 번쩍번쩍한 간판이 있고 자동으로 문이 올라갔다 닫히는 차고에는 하얀 선으로 그어진 박스마다 몇 대의 차들이 세워져있으며. 안으로 들어오면 복도가 있고 복도 바닥에는 빨간색 카펫이 깔려 구두 발자국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306호,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하지만 어젯밤의 내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높고 넓은 침대와 어둑한 조명아래에서 내가 어떻게 잠들었는지를. 깜빡하고 불을 끄지 않고 잤다. 술집에서 나와 집으로 오기까지의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가.
다행히 눈앞에는 형사들이 없었고, 오전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모텔을 나왔다. 어제보다 더 추워졌다. 골목 입구 쪽 전봇대에 누군가가 토해놓은 흔적이 있었다. 지나쳤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한 남성이 나를 노려보며 지나간다. 경찰차 한 대가 지나갔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운 뒤 돌렸다. 나는 앞만 보며 걸었다.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구두 발자국은 더 큰소리로 바닥을 두드린다. 눈 앞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차는 지나갔다.
자동차는 멈췄다 방향을 틀었다 다시 달리기 마련이다. 사이렌을 켠 경찰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지 말라. 너는 죄를 짓지 않았다.
어느 철학가가 해준 말이었다. 교도소 안에서 만난 한 철학가가 내게 한 말이었다. 자네의 육신은 죄를 지었으나 자네의 영혼은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럼 내 생각들은 도대체 뭐였죠...'
나는 그때 울며 그런 말을 했다. 바깥의 날씨는 쨍쨍했으나 안에서는 비가 내리며 그런 문장이 빗속을 달리는 사람처럼 지나갔다. 그는 그날 1200미터의 거리를 달렸다고 한다.
신문을 읽었다. 동주에게 부탁해 신문이며 읽을거리들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날짜도 상관없다고 했다. 잡지도 좋으며, 하지만 소설은 싫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그 뭉치 사이에 동주 자신이 쓴 시집 한 권이 끼워져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쑥스럽지만..."
나는 웃었다. 특히 여섯 번째 시, '별 헤는 남자'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부터는 빈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항상 옆에 앉고 누웠던 범죄자는 내게 작가가 될 거냐며 비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써보라며 자신의 일대기를 늘어놓았는데 듣는 시늉만 했다. 그래도 전혀 쓸모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어서 오늘 쓰는 글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처음에는 모든 일이 설레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그게 3년이 되고 4년이 되면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4년 째인가에는 그런 글을 썼다. 너와 나의 사랑 이야기. 우리 둘만 아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실화가 아니었으나 실화처럼 꾸며진 이야기. 나는 그것이 창작은 아닐까 의심했고, 곧 심장이 뛰었고 나중에는 다른 범죄자들의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 갇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