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1

by 문윤범


2010 년 10월 17 일, 난 파리로 가는 아에로플로트 SU 0424편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는 8976km다. 지도상으로는 파리가 런던보다 가깝지만 실제로는 더 먼 거리에 있다. 서울에서 런던까지의 거리는 8871km다. 왜냐면 세계는 조금 휘어져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그 행성을 반쯤 이동해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는 나와는 달랐다. 그곳은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파리로 갈 때 난 모스크바 셰레메티에보 공항에서 환승했다. 엄마는 인천국제공항을 여전히 떠나지 않은 채 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색대 앞에 선 내 모습을 말이다. 뒤돌아보니 그런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난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공항 검색대 직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난 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걸었고, 터미널로 향하는 내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 하나가 짊어져있었다.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8시간, 모스크바에서 파리까지 4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난 그때 만난 승무원들에게 경의을 표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에게 존경 받을 것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난 인천에서 모스크바로까지 이동하는 내내 승무원 여성의 성실한 물음에 불성실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입을 여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었다. 밥을 먹는 것도,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하는 일도 힘겹기만 했다. 누군가가 신발을 벗어놓고 있었는지 이상한 냄새까지 났는데, 아무튼 그곳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공간이었다. 그럴 줄도 모르고 창가 좌석을 예약해 구석에 처박힌 채로 8시간을 와야만 했으니 말이다. 모스크바에서 환승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 훌륭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한 시간 밖에 되지 않는 환승 시간 동안 과연 무사히 다음 비행기에 올라 탈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잠이 들었고, 다시 깨보니 비행기는 울란바토르 평야 위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때 실감이 났다. 내가 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셰레메티에보 공항을 헤맨 한 시간 동안 많은 러시아 인들을 봤다. 금발의 키 큰 러시아 여자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고, 미르코 크로캅을 닮은 남성이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난 마치 홀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만 같았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고 나는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 역시 나를 향해 시선을 뒀다 떼어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난 아직 어느 터미널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문득 인천에서 대한항공 직원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한 시간 안에 거기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촉박할 거예요."

탑승 수속 과정을 생각해보면 시간이 촉박할 것이란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을 확인하고 표지판을 보며 따라가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눈 앞이 캄캄했다. 긴 줄 하나가 보였는데 사람들이 무기력한 표정을 지은 채로 차례대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줄의 길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한숨을 내뱉거나 하나 둘 바닥에 쪼그리고 앉기 시작했다. 난 그 줄 앞에 몇 분 동안을 서 있었다. 종이를 봤다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하면서 말이다. 그곳이 환승 터미널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직원이 그 줄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있었는데 표정이 무척 차가웠다. 한 서양인 남자가 종이를 내밀며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줄을 서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같은 말투였다. 그때도 누군가가 줄을 서지 않아 혼이 났는데 꼭 그녀와 닮은 모습이었다. 그 직원은 나이가 좀 들어 보였는데 안경을 썼고,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공항 직원들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있어 더 엄격하게만 느껴졌다. 난 도무지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줄만 서 있다 시간을 보내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등을 민 듯 불쑥 그녀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때까지도 난 부모의 가르침에 의해 학습된 생각으로만 움직이던 몸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정확이 스물 아홉이었다. 용기를 내어 종이를 들고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움츠려 든 자세로 종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낚아채갔다. 갑자기 심각해지는 얼굴 표정이었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을 읽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넌 도대체 뭐하고 있다 이제 나타났냐는 듯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가는 것이었다.

난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이제야 공항 안의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인 것 같았다.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어딘가에서 그녀는 다시 나를 다른 직원에게 인계했고, 그 직원은 다시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여권을 빼앗아가 도장 찍어주고 또 다른 직원에게 나를 넘겼다. 그곳에서 난 마치 러시아 인들에 의해 움직이던 몸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턴 진짜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덕분에 난 시간에 맞춰 환승할 수 있었다. 뒤돌아 떠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고마움을 표했고,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그들이 잘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난 다시 다음 비행기를 향해 발걸음을 떼어내야 했다.

갑자기 들리기 시작한 프랑스어와, 자리를 잘못 찾아 앉았는데 그곳 앞에 와서는 그냥 우리 자리를 바꾸는 걸로 하죠 라고 하던 한 프랑스 남자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내 모습.

일 년 넘게 프랑스어를 공부해 갔지만 한동안 프랑스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물론 에어프랑스 승무원 직원들에게도 성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와인 한 잔 드릴까요? 라던 질문에 네! 라고 대답하던 내 모습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비행기 안에서 와인을 마실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해도 말이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신의 누이인지 애인인지 모를 여자가 먹지 않고 넘겨 준 파스타를 접시째 들고 먹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던 걸까. 아무튼 그 모습 하나는 참고할 만했다. 서양 음식을 먹을 때 꼭 우아해야 할 필요는 없구나. 나이프 질 잘 못하는 내가, 그런 모습에 꼭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구나 하고.


파리의 밤 풍경을 보이며 비행기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를 떠난 SU 0449 비행기가 파리에 도착하던 순간이었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나서던 순간부터 다시 눈 앞은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난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푸근한 인상의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짐을 들어주고, 짐을 트렁크에 싣고 뒷좌석에 앉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감상하며 시내로 향하는 내 모습을. 하지만 공항 앞에서 마주친 건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었다. 공항 입구에 우르르 몰려 있던 택시 기사들은 나를 향해 공격적으로 달려 들었다. 그 중에는 중국인 같이 보이는 남자도 있었는데 난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딱씨'라고 외쳐댔다. 프랑스어는 t 발음을 ㄸ 에 가깝게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배워왔던 것이지만, 스스로도 반복적으로 말하며 연습해온 것이었지만 그 발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들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그건 그들이 한 단어를 짧은 시간 안에 반복적으로 말하며 압박감을 준 영향이기도 했다.

난 곧바로 자리를 뜨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떼어내야만 했다. 하룻밤 25유로에서 30유로 정도 하는 호텔이 있는 곳으로 가 달라고. 그러자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아냥댔다. 그 모습에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었는지, 그들 사이에서 우스갯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지.

캐리어를 끌고 베낭을 멘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 걸었다. 그땐 난 그들의 뒷모습이 왜 그리도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치 안내자와 같았고 나를 인도해주는 구원자와도 같았다. 그들이 뒤로 멘 가방만 보며 걸었다.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향하는 곳은 RER 역이었다. Réseau Express Régional. 고속 교외 철도로 번역되는 것이다. 2층으로 된 열차에 내 몸과 짐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열차는 파리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본 파리 거리의 밤 풍경. 그 공기를 잊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왜냐면 그때 난 온갖 두려움과 설렘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곳 한 가운데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땅 밑에서 땅 위로 올라왔는데 마치 파리의 공기를 처음 마시는 것만 같았다. 공항 앞에서는 긴장감 때문에 숨을 쉬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RER열차 안에서 맡았던 냄새들은 조금 퀴퀴한 것이었다. RER에서 내려 메트로 역으로 몸을 옮겼을 때는 잠깐 설레기도 했다. 어디선가 Frehel의 ‘Si Tu N’etait pas la’ 노래 소리가 흘러나올 듯 했기 때문이다. 역 안에 붙어 있는 광고 사진들을 볼 때는 ‘아멜리에’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를 듯했다. 프랑스에서는 원래 아멜리에를 아멜리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목이 네 글자여야 흥행을 한다고 해서 그랬다는 카더라가 있다.

아무튼 바깥의 공기는 차갑고 싸늘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오래되고 낡은 빨간색의 미니 자동차에 오르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곳이 유럽이라는 것을 느꼈다. 건물들의 모양도 그곳이 파리라는 것을 말해줬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곳에 25유로, 30유로 정도를 주고 묵을 호텔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다. 나중에는 그 정도 가격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호텔을 찾게 되지만 그건 꽤 먼 미래의 일이었다. 난 단지 이 하룻밤을 버텨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민 가방을 한쪽 손으로 끌고 한쪽 어깨로는 노트북이 들어있는 큰 가방을 메고 오페라 주위를 헤맸다. 왜냐면 그곳 주위에 숙소를 연결시켜 준 어학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그곳에 찾아가야 했기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 가격으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을 찾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택시 기사들의 비아냥대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시 그들의 얼굴 표정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때 난 휴대폰도 없었다. 2010년이면 스마트 폰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시기였다. 그리고 난 아직 그런 것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 고생은 어차피 내가 산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되기만 하는 결정이었다.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

정확히 내가 몇 시간을 그렇게 헤매고 다녔는지는 알지 못한다. 체감상으로는 세 시간이었다. 그 정도는 돼야 내가 그 정도로 힘들었다 말하기 적절할 것 같다. 골목길 안 깊숙한 곳에서 연결된 막다른 골목길을 보다 이제는 저런 곳 구석에 쳐박혀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 갔다. 난 수많은 호텔들을 들락날락했다. 기대를 품고 들어가 실망한 표정으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 하는 곳은 없어요. 죄송해요."

그 즈음 난 숙박 요금 한도를 스스로 조금 더 올린 상태였다. 40유로 정도 되면 그곳에 짐을 풀겠다고 마음 먹었다. 25유로, 30유로의 숙박비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그 동네에서는 그랬다.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는 짧은 대답 뿐이었다.

“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40유로로도 안되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체념하듯 뒤돌아 섰다. 죄송하다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문을 열고,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이 나를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그는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대화 내용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사장님! 여기 왠 남자 한 명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호텔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방은 많이 남고 하룻밤 싸게 재우면 안될까요?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통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더니 전화를 끊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방 하나를 주겠다고.

지금도 그 호텔을 찾고 싶어 가끔 인터넷을 뒤적이는데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남겨둔 단서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난 너무도 지쳐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담배 한 대를 태우고 곧바로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침대 맞은편에 TV 한 대가 걸려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거리의 풍경이 그려질 뿐이다. 오페라에서 비교적 가까운, 하지만 그렇게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 어딘가에 있었던 것 역시 중요한 단서 중에 하나다. 대충 마들렌 역 주위 어딘가에 있었던 호텔인데 지금은 짐작되는 호텔 하나를 찾은 상태다. 물론 그곳에 다시 묵을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호텔을 나오니 빨간 불의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들어왔던 파리의 모습이었다. 파리였다.

난 일주일간 머물 숙소를 계약해두었고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오페라 주위를 떠나지 않고 몇 시간이나 맴돌았던 일은 잘한 일 같았다. 사무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묻는 등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담당자를 만나 함께 숙소로 향했고 그곳에 짐을 풀었을 때 비로소 난 가족에게 전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왔다고.

하지만 일주일 뒤에는 루앙이라는 곳에 가야 했다. 원래는 파리에서 체류할 예정도 아니었다. 다녀야 할 학교는 파리에 있지 않았다. 그곳은 파리에서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있는 노르망디의 한 도시였다. 그곳으로 난 다시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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