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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로 가는 꿈

by 문윤범


대책 없는 출발이다.

긴 여행을 경험했을 때 그 모든 계획이 쓸모 없어지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로 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프랑스 영화도 찾아보고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즐거운 이야깃거리다. 그 모든 게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기에.

대책 없는 계획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난 계획을 세운 게 아니었다. 흉내내고 싶고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없었던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몇 줄 몇 페이지의 글을 썼지만 그 이야기는 구성된 게 전혀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많은 감정들을 축적해왔고 풀어나갈 수 있을 듯했다. 홋카이도의 겨울,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며 한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럴 것이다. 후즐근한 외투를 걸친 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저벅저벅 걷는 남자. 기본적으로 '스노우맨'의 마이클 패스벤더 모습을 떠올렸지만 거기에 일본 남자 얼굴을 갖다 붙였다. 오다기리 조의 팬이었기에 그런 얼굴을 붙여 봤는데. 너무 이상적인 걸까. 아니면 이상한 걸까.

그 영화에서 마이클 패스벤더는 손에 술병을 쥔 채로 처음 등장한다. 그의 손에는 보드카 한 병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걸 일본 술로 바꿔보기도 하고. 영화의 배경은 오슬로였다. 그러므로 자동적으로 든 생각은 그럼 난 평창을 배경으로 해야 하나 였지만 영 이상했고.

우연스럽게도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연결됐다. 홋카이도면 어떨까?

삿포로는 너무 잘 알려져 하코다테라는 도시를 찾았는데 마침 케이블카가 있고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멋진 곳이었다. 스노우맨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다. 아이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고 한 남자가 교차하며 오르는 모습이 담겼다. 그 산 정상에서 하늘에 대고 총 한 발을 쏘는 남자.

한 스웨덴인 남자가 노르웨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한 편을 찍었고 절묘하게도 난 한국 사람이었기에 그렇다. 내가 일본을 배경으로 글을 쓴다 해서 이상할 건 뭐가 있나. 심지어 그 영화에서는 오슬로 경찰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기이한 광경도 벌어졌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좀 웃기기도 했고.

히사시라는 이름은 이와쿠마라는 성을 가진 그 야구 선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다기리 조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했고 야마모토 요시노부 같은 이름도 좋지만 처음 지었던 걸 이제 와서 바꾸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설정이라 할 만한 건 꽤 많고 디테일한데 정말 잘 모르겠다. 난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누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범죄 스리럴 영화 중에 최고는 역시 '살인의 추억'이었지만 '큐어'를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최고는 영원하지 않다. 정작 제목은 1998년작 '도쿄 아이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 내용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제목 하나 단 몇 개의 장면들로 인해 그 영화는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미도리라는 일본인 친구에게 난 그런 말을 했다. 내 이상형은 요시카와 히나노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사진을 검색했는데 도쿄 아이즈의 그 배우가 맞나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내 이상형이 저런 여자라고?

영화라는 환상은 꿈을 꾸게 한다.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마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그건 곧 현실이 된다.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는 거지 생각도 든다. 딱히 할 거도 없는데 뭐.

일본으로 떠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면. 히로시마로 갈까 그냥 바로 도쿄로 갈까, 생각보다 후쿠오카라는 도시가 매력적인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따질 것 없이 하코다테가 최종 목적지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 1위라고도 한다. 그곳에 가면 야나가와 히사시가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을 꾸며.

그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https://youtu.be/qiFgfPiJHyA?si=WvLb4CZgBt7hE5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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