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적고 나면 왜 그랬을까, 그게 글을 쓰는 이유일까, 그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인가? 습성일 뿐 그건 다른 큰 의미 없는 것이라고. 범인은 꼭 범행 장소로 다시 온다는 말처럼.
그 영화를 봤고 난 아직 그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도 여러 영화들 흔적이 느껴진다. 그중 하나는 화이였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2013년 개봉영화다.
스릴러 영화가 보고 싶은 건 기분이 뒤숭숭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요즘은 계속 그렇다. '아버지들이 다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돼야지' 그 문구를 보며 곱씹는 게 있다. 괴물을 보는 화이처럼, 내가 우러러보는 대상, 혹은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를 극복하고 따라가기 위해선 오직 그가 되는 방법뿐이었다고.
내 아빠들. 그 남자들이 온갖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면 난 그걸 보고 겁을 먹거나 삐뚤어지면 그처럼 되려 할지도. 어떤 경우에서든 난 그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아빠들처럼.
히사시는 왜 여자를 두려워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 캐릭터를 그렇게 그리나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난 마이클 패스벤더를 본다. 다시 2017년 개봉작 '스노우맨'으로.
오로지 연출자에 대한 신뢰 하나로 접근했던 작품. 마이클 패스벤더에 대한 믿음 또한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도 뒤숭숭한 기분이었는지. 안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그땐 더 심했는지 모른다. 'MISTER POLICE YOU COULD HAVE SAVED HER I GAVE YOU ALL THE CLUES' 그 글자들이 그려진 포스터를 폰 배경화면으로 해놓은지 몇 년 되었다. 나도 저런 영화 한 편 찍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던 일. 아니면 누가 시작하라고 시켰을지도 모르는 일. 나도 알 수 없다. 그렇게 그 소설은 시작되었을 뿐이다.
좀 더 가까운 과거 난 '파묘'라는 영화를 본다. 그 영화는 '곡성'과도 닮은 점이 많았는데 그 작품 또한 오래도록 이야기된다. 나도 가끔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살인의 추억'은 '큐어'를 보고 어떻게 그런 멋진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나 그 이유 하나를 찾은 듯도 했고.
결국 내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는 무작정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홋카이도에 눈이 내리면...
소설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지 못했던 난, 그 모든 의심을 버린 뒤에야 난 진짜 작가가 된 듯했다. 캐릭터를 설정하거나 스토리를 구성하는 일, 그건 무언가 멋진 일 같다. 그 모든 잡스러운 형식들을 모두 버린 뒤에 난 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삶, 그림 그리는 일.
가끔 그 동물들도 상상할까 궁금해한다. 지난 어떤 장면을 그리거나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일을 그리는지를. 문을 뒤집으면 되는 동물 곰, 그 이름만으로도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개, 그것들은 모두 지난날을 기억하고 앞날을 예상할까.
그 이야기는 앞으로 또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하며 엔터 키를 누른 게 지금까지 왔는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다가오는 겨울에 멋진 마지막 장면을 그릴 수 있겠지? 그런 희망만을...
야나가와 히사시가 날 본다. 날 왜 그런 놈으로 만드는 거냐 곧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히토미는 또 무슨 죄인지. 내 아들도 딸도 아닌. 그들은 내 자식 그 작은 몸 안의 성격들일 뿐이다. 아니면 감정들일지 모른다.
문득 화이 생각이 나서. 아니 오늘은 그 영화 예고편을 보고 반드시 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https://youtu.be/_p4BCpJ44Qg?si=0Eqf-XTc_XEuTJQ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