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본 영화 속에서 자꾸 끌리는 건 그런 연출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혹은 남자 주인공 옆에 있는 여자가 그를 조종한다거나, 아니면 그 정신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그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 그런 매커니즘에 대한 연구 아닌 연구 같은 것이 있었으며 난 그 연구에 몰두하는 듯했다. 그건 내가 그런 구조 혹은 구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일지 몰랐다. 여자를 악독하다 못해 사악하도록 만드는 것, 그런 일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님에도 나 역시 여성들의 어두운 면모에 대해 비추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내 시야는 무척이나 좁아져 있곤 하지만, 그래서 나중에 내가 쓴 글을 읽거나 했을 때 그건 결국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 현상 같은 것들에 대한 연구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심오한, 난 왜 남자로 태어났고, 그래서 난 여자들을 좋아함에도 왜 그들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는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아니면 때로 내 몸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교차시키며 다른 누군가에 혼란을 주기도 했던.
내 남성성이 문제라거나 내 여성성이 더 큰일을 했다 말하거나 그처럼 누군가를 헷갈리게 하는 일. 그건 너무 복잡한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난 여자가 너무 좋지만 난 여자들이 너무 싫어, 그런 말을 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가끔 난 여자 말을 너무 잘 듣는다거나 하는 남자들을 보면 답답하다는 듯, 꼭 고개를 갸웃거릴 듯이 왜 그럴까 스스로 묻는 등. 여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생각들이 있겠지만.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남자에 빠져 살지? 아니면 남자 없이 못 사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인간은 자존심을 잃을 때 그 삶이 무너지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그걸 지키려 한다. 아니면 받아들이며 바보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난 바보가 아니라 하며 말이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너흰 다 죽어, 그러면서 또 한 번 비겁해지는.
뭐가 어쩔 수 없는 거지? 인생은 살아남는 싸움이라는 말처럼 결국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뿐이다. 어쩔 수 없는 건 그 내 생각이 아닐까? 마음이 아니라. 일렁이는 감정을 주체하려 멈춰 세우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좀 더 단순하고 싶지만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어렵고 힘들고 모든 게 너무 꼬여 있어 이해조차 하기 힘들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제목은 도끼, The Ax였다.
https://youtu.be/ckHwZNuV-wQ?si=EaQye1KYYRYarzc7
무언가를 절실히도 배우고자 했을 때 난 그 감독의 영화를 끊임없이 봤지만 이젠 그 감독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이 나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보낸 편지에 답도 안해주고, 어디선가 어느 때에는 내 글을 훔쳐 보고 읽고 있다는 생각에. 내 이야기의 뿌리가 만약 박찬욱의 머리카락이라면.
인간적이기는 무슨.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그냥 이젠 때가 된 거였다.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듯 등을 돌리는 일을.
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끝내 그 원류를 부정하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아직 완전히 배신하지 못해 머뭇거렸다거나, 아니면 여전히 무서운 존재라 느끼는 건지.
살다 보니 치가 떨리는 일이 참 많았다. 그런 이유로 한때 그의 영화에 큰 위로를 받고 행복했으면서 이젠 내가 쓴 글을 내가 읽는 게 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긴장이 된다. 그럼에도, 난 아직 멀었구나 또 그런 생각이 들면 어떡하나 불안해한다. 뭐 그 한 사람뿐인 것도 아니라서. 예를 들면 아주 최근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라던가.
몇 년 전 본 영화 '포제션'은 안드레이 줄랍스키라는 감독에 대한 존경을 품게 하기도 했다. 더 큰 꿈을 꾸려고. 내내 그의 영화에 묶여 있으면 더 발전할 수 없을 걸 알아서였는지. 언젠가 어느 날에는 영화라는 꿈을 영영 꾸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소설이 영화를 컨트롤하기 시작하는 날이 다시 찾아 오면.
손예진이 저렇게 카리스마 있었나? 그런 생각도 하게 만드는. 어느 날에는 꼭 이자벨 아자니와 같은 여배우, 그런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 내고픈 꿈을.
난 남잔데.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여성을 우상처럼 여기는 일은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난 안다. 내 안의 여성성이 무시당하는 순간, 혹은 참견 받거나 누군가 손을 넣어 그걸 움직이려 한다거나 할 때면 잠자코 있던 남성성이 뱀의 머리처럼 솟구쳐 오를 듯이 튀어나오는 걸 느낀다.
난 남자로 태어났지만, 그런 남자들은 모두 여자로 태어날 잠재성을 가진 존재였다. 작별이라도 하듯 헤어졌을 뿐, 그 여성성을 난 드러내보일 수 없을 뿐.
내가 살며 가장 용감하다 생각하는 때. 내게는 섬세하거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 같은 것이 있다는걸, 그걸 감추지 않고 드러내 보일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 생각하는 순간.
문득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여자였지만 남자 같았고, 내게도 여성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 아이가 어느 날 날 지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 품고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동질감이었을지도. 그것도 결국 지지배였지만.
날 답도 없는 남자 새끼라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겠지. 그 친구도.
내게 동지이자 적이었던 그 모든 여성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