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할머니 가게

by 문윤범

https://youtu.be/IPv4urVno8M?si=1HrHmYSi2_9Wc-dq


요즘은 집 근처 커피집에 가는 일이 기다려진다. 거기서 커피 마시는 일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날이 쉬는 날이니까. 그날만을 기다리며. 그곳에서 커피 마시는 날을.

난 서양인들로부터 커피를 배웠다. 처음 먹어본 건 아마도 조금 더 어린 어느 날. 그렇지만 그건 커피가 아니었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처음 마셔본 커피야말로 진짜 커피였다고. 프리미엄이 붙었는지도. 파리, 그 도시의 어느 좁은 골목길에서.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 있던 조그만 카페였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하는 가게였다. 테이블은 바깥에 달랑 한 개. 손님이 좀 오면 두 개. 안에는 할머니 앉을 의자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조그만 의자 하나를 내줘 그곳에 앉게 된다. Brûlerie Daval. 그 카페의 이름이었다. 난 바스티유 할머니 카페라 불렀다. 하루 이틀 찾다 3년, 마지막으로 들린 그날 할머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 없었지만.

할머니가 늘 하던 말은 그것뿐이었다. 설탕 하나 줄까 두개 줄까, 부드러운 커피 마실래 쓴 커피 마실래, 그러면 늘 부드러운 걸로. 지금은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드는데. 이젠 에스프레소만 마시려고 해 그땐 왜 쓴 커피에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이제 그 가게는 영업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갈 수 없다. 그 자리에는 다른 젊은 남자가 다른 이름으로 커피집을 이어받아 한다는 이야기만을.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그곳에 살 수 있었다면 말이다. 할머니는 어느 날 내게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그날따라 몸이 많이 안 좋다며 좀 도와달라 해서. 그럴 줄 몰라, 시키는 대로 몇 번 들고 붓고 움직여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집 근처 커피집은 그 할머니 커피만큼이나 맛있고 나름 분위기도 좋다. 나도 커피를 더 알아버린 것 같다. 에티오피아로부터 온.

검고 쓴, 그러나 고소하고 부드러운. 그 마실 것은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전파돼 유럽으로까지 이른다. 처음 그들은 이교도들의 마실 것이라며 거부했다 하지만 끝내 이길 수 없었다 한다. 카페는 프랑스어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 글자는 전세계 거리 곳곳에 새겨져있다. 그리고 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문화에 큰 호기심을 품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부산대 근처라 카페들이 많지만. 이곳저곳 다른 동네 커피집들을 많이 찾아 다녔는데 가까운 곳에 잠깐 내 머물기 좋은 곳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모모스 커피 너무 좋지만. 온천장 모모스는 아침부터 줄 서더라고. 그 짓은 못하겠다며. 영도 모모스는 집에서 너무 멀고, 혼자 가기도 좀 그렇고.

이슬람 교도들은 예배 중 졸음을 막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한다. 난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을 믿지 못했는데 센 것들을 마시고 난 후 알게 된다. 피곤해 미치겠는데 잠은 오지 않는 현상이. 커피는 착각을 일으킨다. 파리 거리에서, 그곳에 그런 길이 그런 카페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찾던 가게. 이곳에 온 동양인은 아마 내가 처음일 거야 했는데 몇몇 일본인이 먼저 왔다 갔더라는. 제기랄.

꿈을 찾아 떠난 도시, 그곳에서 머뭄. 날 점점 착각에 빠뜨리던 커피, 그곳 문화 속에서.

이젠 부럽지 않다고. 이곳에서도 꿈을 꿀 수 있고 문화에 빠져들 수 있다는 걸. 커피는 보통 사람이 만드는 것,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없는. 뭐 폴 바셋이 직접 타주는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면 좋을 것 같지만.

집 근처 커피집의 이름은 타임 앤드 플레이스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갈 일 없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우연히 들렀다 편안함을 느끼고 돌아왔다. 며칠 전에는 엘살바도르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셨는데 황홀했다. 벽에 붙은 조금 더 어릴 때봤던 영화 포스터들에 정겨움을 느끼기도. 누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카페, 그리고 그곳 냄새.

종소리가 들리면 난 따라가 기도할 테지만. 내 등 뒤에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냥 더 잘 살고 싶다고. 그런 희망으로 걷는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도 힘을 얻을 것이라고. 그 길 끝 그 집에서 봐, 커피 한 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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