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5l2ChAqRDg?si=7b4LMXzeMC13NSby
빨간 목장갑. 그들이 나눠 낀 건 라텍스로 코팅이 된 장갑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배송기사가 오는 날이 내심 기다려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네덜란드인이어서.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고 친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그들이 나눈 대화는 그랬다.
"축구 좋아해?"
"네덜란드에서 왔어?"
"어"
"베르캄프를 알지"
"오래전 선수지"
"어느 팀 팬이야?"
그랬더니 느닷없이 소매를 걷어올리고. 그리고 내가 본 것은 그의 팔 위에 새겨진 타투였다.
"페예노르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송종국 알아?"
"알지"
"잘했지?"
"어. 오노 신지가 기억이 나"
이 새끼 뭐지.
송종국도 기억이 난다며 좋은 선수라 했지만, 아무튼 그가 먼저 떠올리고 싶었던 건 오노 신지의 활약이었던 듯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때 처음 안 것이었다. 그 물품들이 바다를 건너 네덜란드 땅에 도착해 온다는 것을. 로테르담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그 여정을 떠올리게 된다.
일주일에 두 번 네덜란드에서 냉장 냉동 물품이 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파리에서 가장 큰 한인마트였던 그곳은 한국 또는 일본의 식료품들을 팔았고 난 그곳에서 몇 개월 일했다. 어느 날 피부를 다 드러낸 짧은 머리를 한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고.
'뭐하는 놈이지?'
페예노르트는 로테르담을 연고로 한 축구 클럽이며 네덜란드에서는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등의 클럽과 함께 명문팀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 축구를 볼 때 관중석에서 소리 지르던 놈 중 하나가 너 같은 놈이었구나.. 난 그 친구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
웃통도 벗고 응원할 것 같던 그 녀석은 큰 화물차를 몰고 파리로까지 오는 것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었다. 놀랐던 건 그 녀석도 빨간 목장갑을 끼고 일한다는 것이었는데 난 그릴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도대체 그 장갑은 누가 만든건지.
"장갑을 끼라."
처음 그 장갑을 낀 건, 돈을 벌려 일을 하기 위해 그 장갑을 낀 것은 말이다. 20대 초의 어느 날 백화점 구두 매장 알바를 할 때였다. 창고에서 구두 상자를 정리하는 단기 알바를.
그때 그 형이 말했다.
"장갑을 끼면 과감하게 잡을 수 있잖아."
제대로 손 씻지 않고 치킨이라도 먹게 되면 라텍스의 맛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치킨은 때로 소스의 맛이 중요해! 아무튼 난 그 장갑을 그곳에서 백인과 나눠 끼고 물건 나르는 일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인터불고에서 하던 그 사업은 내게 그런 경험마저 하게 하는데. 바다를 건너 그 먼 땅으로 간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지네딘 지단이 날 그곳으로 이끌었지.
먼저 파리 유학을 떠난 몇몇 가까운 사람들의 존재는 내게 도전의식을 불어 넣었지만 도착 후에는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그건 도전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 친구는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됐을까. 로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큰 항만을 가졌고 그 규모는 2004년 싱가포르항이 따라 붙기 전까지 세계 최대였다 한다.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며 해외에서 들어오는 많은 물품들이 거쳐가는 곳. 단지 그곳에서 나고 자랐을 이유 때문일까. 더 멋진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 중요한 건 그 차 한 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파리에 살고 머무는 한국인들, 또 K푸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프랑스인들이 그 갈증을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내 나라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나라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들.
프로 축구는 내가 아는 가장 큰 사업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선수들을 상품으로 볼 순 없겠지만. 역사적인 일이기도 하지, 때로 난 그리 말했는지도. 지네딘 지단이 월드컵 결승에서 터뜨린 그 두 골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 때로 그것을 잊기도 하는 사람들. 이 일은 경제적이며 우린 그런 것들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돈이 중요하나? 응, 가끔 난 그런 생각을. 돈이 없으면 비행기도 탈 수 없고 버스나 지하철도 탈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저 멋진 자동차의 바퀴가 구르는 모습을 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요즘 난 벤츠 eqs가 끌려!
그 친구가 몰던 그 큰 차는 어느 회사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추측하는 건 아마도 반드시 릴을 거쳐 파리로까지 오지 않았을까?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던지, 그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지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난 어쩌다 그곳으로까지..
로테르담 항구는 지금 세계 최초의 AI 항구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마저 곧 인간 손을 벗어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럼 그 친구는. 뭐 나 먹고살기 바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기본소득으로 먹고살며 페예노르트 응원이나 하며 살까? 별 걱정을 다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그 장갑을 벗는 날이 오면 말이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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