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 버스를 타고 가면 사람이 많아 싫어. 부산 용호동에서 나오는 버스들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서서 갈 가능성 또한 거의 없음에도. 요즘은 새 버스들이 많아졌는데 12번 그 옛날 버스 좁은 좌석에 앉아 옆사람과 부대끼며 앉는 일이 괴로웠다. 양산에서 시작되는 퇴근길 아침 내 이야기다. 23번을 타면 부산 화명동 방면으로 가 또한 집으로 갈 수 있는 루트였고. 부산과 양산을 오가는 내게 가장 중요한 버스였던 12번을 버리고 다른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출근할 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또 12번이지만.
23번을 타고 퇴근하다 보니 자연스레 화명동 방면으로 가게 됐고 그 동네에서 한 두 번 밥을 먹고 돌아갔다. 술집 많은 덕천동이라면 24시간 하는 밥집이 있지 않을까? 이곳저곳을 다녀봐도, 밤에 일하는 게 안 좋은 건 퇴근 후 밥 먹고 들어갈 만한 데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국밥 또 국밥. 온천장에 가면 무려 24시간을 하는 중국집이 있는데 한 번씩 가도 자주 먹기에는.
어느 날 덕천동을 지나다 버거킹을 본다. 새로 생겼군, 그런데 불이 켜져 있는 것 아닌가. 버거킹도 24시간 영업을 해? 응, 덕천동 버거킹은 해.
한때 노브랜드 버거를 자주 들락거리다, 가끔 버거킹도 갔다 어쩌다 이젠 햄버거가 질렸어, 그런지 몇 년이 지났나 일 끝나고 햄버거 먹는 일도 색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치즈와퍼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치즈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난 와퍼에 치즈를 더하는 선택을 한다. 감자튀김이 왜 이렇게 맛있지? 퍽퍽한 감자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으깨는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제 난 프랑스인들이 퍼트린 이 감자 요리 방식을 탐구하게 된다. 버거는 거들 뿐. 한 손으로는 바삐 감자튀김을.
물론 살며 가장 맛있게 먹은 감자 요리 중 하나는 여전히 으깨 조리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어느 식당에서 어떤 프랑스인이 내놓았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오리지널스 메뉴로 가니 뉴욕 스테이크에 황홀할 만한 글자들이 나열돼있고. 모르겠다, 그냥 가장 끌리는 글자를 눌러 주문한다. 이탈리안 살사 베르데.
녹색의 소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salsa verde'는 내가 이탈리아를 가본 적 없어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왜인지 멕시코의 맛이 나는 걸. 이탈리아와 꽤 유사한 언어인 스페인어에서도 살사는 소스라는 뜻으로 나오니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멕시코 사람들은 그걸 자신들만의 정체성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추측도 해보지만.
그게 내가 일을 하고 퇴근한 뒤 밥 먹는 일과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지만 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양산에는 지하철 그 땅 밑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산으로 다시 넘어오면 좀 다른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수많은 부산 사람들이 넘어가 살고 있는 도시 양산 그리고.
부산은 경상남도 여러 도시 시골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대는 도시였다. 그랬던 그들은 다시 근처 도시들로 살려 떠난다. 먹을 것을 찾아, 아니 살 곳을 찾아서. 양산은 부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 대구와 경산이 그렇듯, 그렇지만 영남대와 영산대는 서로 아무 관련이 없듯 내가 버거킹을 먹고 스페인과 멕시코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건 별 의미는 없는 것이다.
궁금하다. 왜 그곳으로 갔을까? 3호선 종합운동장역 근처에 있는 진미국수라는 식당은 퇴근 후 밥 먹기 가장 좋은 곳인데 매일 가지는 못한다. 거의 모든 음식에 쪽파 당근 조합으로 포인트를 줘 날 감동시키는 그 집 아줌마 반찬들은 하나 하나 다 맛깔난데 매일 갈 수는 없다.
어제는 아저씨들이 TV 뉴스를 보며 정치 이야기를.
"전재수가 되겠던데?"
그러자 마주 앉은 자 말하는데.
"통일교 때문에 되겠나?"
도널드 트럼프가 관세를 15%에서 다시 25%로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뭐고 뭐 양아치가?'
아직 산 자들이 곧 죽을 자를 향해 총을 쏴대는 영상을 본 뒤 더는 견딜 수 없을 듯했다. 난 그 나라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생각하면서도 이 혼란 속에서는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패스트푸드가 좋은 건, 햄버거집이 좋은 이유는 혼자 조용히 앉아 밥 먹기 좋아서.
어쩌다 현금을 드린 뒤 그걸 좋아하는 듯했던 주인 아줌마 표정을 본 뒤 매일 현금으로 밥값을 지불하고, 어느 날은 잔돈이 없어 오늘은 그냥 천원 깍아드린다며 웃으며 그런 대화를 나누는 일도 지칠 때가 있는 건 왜인지. 입 열지 않고 표정 짓지 않고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편히 앉아 밥 먹을 수 있는데.
매장식사, 포장, 추가 메뉴 선택, 그리고 선택 안 함, 적립없이 결제
'아 씨발 진짜'
이런 거 유튜브에 올리면 재밌을까? 지난 쉬는 날 난 예전에 많이 걷던 길을 걸으며 영상을 찍어보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도 그 길이 예쁘다고 느낄까? 그 길이 또 어떻게 이어질까 설레던 그때 그날들이..
+ 알렉산더 맥퀸 신발 (군화) 발자국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