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거리 위에

by 문윤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여행 책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여행 관련 에세이가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하나의 장르이기도 했다. 국내 정세에만 떠밀리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는 시대가 됐다. 유럽에 일본인 여행자들이 한창 많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을 여행하는 일이 잦다. 그런 우리는 무리를 지어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비웃곤 했다.

여행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마다 내세우는 이유가 다 다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 한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봤다. '어둠이 빛의 부제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제다'. 나는 이병률 산문집 '끌림'을 읽고 내가 종종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이 여행일 수도 있겠다 합리화시킨 적이 있다. 파리를 여행하던 중 마주친 남자가 자신은 파리에 살지만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어땠는지 그때의 대화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을 보고 그것도 말이 된다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부산 장전동에 살았지만, 살고 있지만 혼자서 중앙동이나 남포동, 해운대 등을 돌아다니고는 한다. 돌아다니고는 했다. 여행이라 말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길 고양이 하나를 마주치고 그 신세가 내 처지와 비슷하다 느꼈을 때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내가 먹이를 찾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존재라는 것을.

생전 처음 외국으로 나간 것은 파리였는데 그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학을 제주도로 갔을 때도 그랬다. 집을 떠나 사는 것이 그만큼이나 막막한 일인지 몰랐다. 돈을 들고 왔음에도 짐을 챙겨 왔음에도 정신이 기댈 곳 없다는 것을 느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다 지쳐 골목길 저 구석에 처박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기댈 곳이 벽밖에 없다 느꼈다.

그러한 경험을 하고 난 뒤에 사람은 조금 미친다고 생각한다. 낭만적인 일이라며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한다. 카메라는 분명 기록을 위해 만든 도구였을 텐데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카메라를 꺼내 든다. 어쩌면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존이 걸린 밥그릇을 앞에 두고 그것을 추억으로 남기려 하다니.

파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있었다. 혼자서 오래된 카페를 운영하시던 분이었다. 난 그 집의 단골 손님이 됐다. 그 할머니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직후였다.

"바다를 건너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야."

잊고 있었다. 집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나면 일어나 손뼉을 치고 싶지 않은가. 이제는 그런 책들이 생존기처럼 느껴진다. 여행기가 아니라 말이다. 가장 멋진 문장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 도착했다. 와 같은.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처음 여행을 떠나 두려움에 호텔 방 안에만 처박혀 있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어떻게든 살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것이 아름다운 현상이라는 착각에 빠져 거리 한가운데에 흠뻑 젖은 채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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