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의 색채

by 문윤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보면서 영화가 매우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흔한 말로 난해한 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토머스 핀천 소설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소설이 영화화된 건지 영화가 소설화된 건지 잘 모르겠다. 토머스 핀천 소설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두 가지를 뽑아봤다. 대중문화에 대한 박식한 인용, 그리고 장광설이다. 長는 길다는 뜻이고 廣는 넓고 舌는 혀로 읽힌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라는 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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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최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봐서 그의 영화가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준 임팩트가 꽤 강했다.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사가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 문화적인 단어들은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조금 더 찾아볼 수 있는 듯했다. 색감적으로 더 강렬했던 것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였다. 영화는 색이 언어가 되기도 하고 소설은 단어가 색깔이 되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일본의 것들이 많이 사용되면 왜색이 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주인공이 입고 나오는 의상도 인상적인데 히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위 문화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색이 사용된다. 또는 주류세력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자극적인 색채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저 눈에 띄기 위한 것일까, 단지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함일까. 정치권이야말로 그렇다. 정당을 표현하는 색깔은 하나 같이 원색적이고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의 광범위함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진 그것과는 꽤 차이가 있다. 그들이 주류 세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정치인을 욕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정치인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상대 정당을 비방하고 욕하는 게 정치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도 정치는 이루어진다. 시대가 변해 지금은 누구를 욕하기보다 조금 더 논리적인 이야기들을 하려 한다. 지금은 토론이 일반화된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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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의 단어들이 오고 가는 그 싸움. 주류세력은 늘 하위문화에 자극받는다. 난 단어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클래식하다 생각하는데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쓸데없이 말만 많으면 인물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도 신비주의라면 신비주의다. 대중문화에 대한 박식한 인용, 그리고 장광설에는 핵심적인 무언가가 없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원하는 듯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헷갈리고는 한다.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고 선명하게 내보일 사람은 없다. 정치를 할 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일지 모른다. 그럼 니 생각은 뭔데. 나 역시 니 생각이 궁금하지만 화려한 색채의 옷과 현란한 말솜씨에 가려 니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영화가 좋을 때가 있다. 커피나 마시고 술이나 마시며 온갖 잡다한 이야기나 하며 시간 보내는 영화. 무료함이 자극적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상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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