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찾는 이유

by 문윤범


사람들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고통 받는다. 노이로제라는 단어가 한창 많이 쓰였는데, 요즘은 아예 PTSD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상을 벗어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른 것을 해보거나, 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 기분이 전환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PTSD는 보통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증상으로 알려졌다. 적을 죽이고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본 후에 어떻게 정신적 장애를 겪지 않을까. 극복 방법은 오로지 치료 뿐이다. 스스로, 혹은 동물이나 식물을 통해서도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한 심리 상태로 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불안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불안은 잊을만 하면 다시 찾아온다. 이곳을 런던이라 생각하면 나을까. 항상 비 내리는 나날 속에 있다 믿으면 우울한 감정에도 익숙해질까. 불안은 제거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도 못한다. 내 하루에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들뜨는 감정을 억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보게 만든다.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지 않은 삶이 되어버린 지금의 내 삶을 마주하게 된다.

페이스북을 하면 홈 화면에서 주위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소식이 마치 뉴스 기사가 되어버린 듯했다. 사람들과 전화도 문자도 주고받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 이유라지만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걱정해 주는 말조차 비난으로 들릴까, 어떻게 지내냐는 말 한마디조차 욕으로 느껴질까. 그리고 혹여 싫은 소리를 듣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떳떳하면서도 왜 고개를 들지 못하는가. 두렵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잘못됐고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내 삶이 불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긴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은 언젠가는 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끝을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까 이 길이 틀린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위해 달리지 않는가. 성공이란 정상에 서는 것이다. 끝을 보는 일이다. 그 말은 끝까지만 가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걷는 이 길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미래를 보며 뒤도 돌아보며, 그리고 다시 걷는 것. 나는 성공이 산꼭대기에 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공을 쫓는 이유는 단지 살아남기 위함이다. 이 길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 끝에 매달린 열매 하나를 따 먹으며 감동하기도 한다. 자연이 내게 준 선물이다. 누군가는 땅에 난 풀을 뜯으며 살지 모른다. 배부름의 차이는 먹는 양이 아니라 만족에 의해 생겨나는 것일지 모른다. 난 배고프지 않다. 단지 불안할 뿐이다. 내일은 또 누구를 죽일까. 또 누군가에 의해 죽임 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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