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1998년 작 영화 '쉬리'
오다기리 조가 한국 영화 쉬리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그 영화를 참 재밌게 봤다.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스파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쉬리의 주인공들은 또 달랐다. 보다 감정적이고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고기 몸속에 도청장치를 심듯 우리 역시 무언가를 삼킨 듯 살아간다. 배신자의 목소리가 있나 추적하듯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도 가끔 애국심을 떠올리고는 한다. 일 년에 몇 번은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본다. 감각적으로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접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폭탄을 실어 나르고 숨기고 그 과정이 묘사되는 장면 또한 즐거웠고 그것에 대응하는 남한 요원들의 활약상도 흥미진진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이 아니라 우리나라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이 더 부각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도 받는다.
파트너로 등장했던 한석규 송강호 두 배우의 입지도 많이 달라졌다. 쉬리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영화였다. 한석규도 정말 좋아했다. 송강호도 정말 좋아한다. 다시 두 배우가 호흡을 맞추는 영화는 없을까. 난 쉬리에서의 유중원과 이장길의 호흡이 꽤 좋아보였는데 말이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제주신라호텔의 벤치도 유명세를 치렀다. 제주도에 있는 대학을 진학해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처음 갔던 곳 중에 하나도 바로 그곳이었다. 호텔에서 노래를 틀어놓지는 않았지만 그 노래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했다. 김윤진의 그 매치되지 않던 목소리는 무엇.
배우 김윤진의 등장도 꽤 신선했는데, 등장하는 내내 험악한 표정만 짓던 북한 요원들과 대비돼 더 인상적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김수로였다는 것은 안 비밀.
그립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때가 이십사 년 전이라는 게. 하지만 안 그립다. 그땐 내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변한 지금이 오히려 내 모습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