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 몸에 들어와 호흡기 세포 표면에 붙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파이크 단백질로 알려졌다. 그 끔찍한 그림을 볼 때 돌기처럼 튀어나와 있는 그것을 말한다. 단백질은 계란의 흰자 성분이다. 인간 몸도 마찬가지다. 요즘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에 관심이 높다. 코로나19가 노리는 것은 호흡기 질환이나 폐 질환이 아닐 것이다. 근육을 못 쓰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서 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감기는 기침을 동반한다. 그리고 몸살로 이어져 인간을 드러눕게 만든다. 서서히 근육이 굳는다. 근육이 굳기 시작하면 인간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저를 들 수 없고, 물병을 들어 그것을 잔에 따를 수도 없고 또 걷지도 못한다. 걷지 못하면 생각이 멈출 것 같다. 왜냐하면 발바닥이 발전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까지 하루 몇 시간을 매일 걸어 다녔다. 그 일을 몇 년 동안 반복해서 했다. 스니커즈 신발을 신은 채로 말이다. 그랬더니 근육이 굳기 시작했다.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드러누웠더라면 조금 나았을지 모른다. 야구 선수들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쉰다.
하지만 난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고 감각적으로 무뎌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진을 빼고 돌아오면 집에서는 앉아 있고 누워 있기만 했다. 고혈압도 당뇨병도 모두 근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심장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백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몸은 병든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도 그리고 다가가 껴안는 것도 모두 근육의 힘이 필요하다. 선물 꾸러미를 손에 쥘 힘도 있어야 한다. 그녀에게 선물을 건넨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내 뺨을 때린다. 근육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코로나19는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손 잡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녀를 안을 수 없다. 그녀가 단백질 함유량 98%의 스매싱을 날린 채로 나를 떠났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선물 꾸러미를 본다. 그 자리에 서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 눈은 뜨고 있을 수 있어서.
어쩌면 경고일지 몰랐다. 바이러스는 때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빨간 등을 켜는 신호등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오래도록 멈춰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파란 불을 켜야 할 때라면 말이다. 세상은 먼저 백신을 선택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스파이크 단백질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할까.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을 죽이려 들고 불구로 만들려는 것은 말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에 면역돼 살 수 있을까.
이미 그렇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잊고 지냈을 뿐. 나는 어디선가 그 바이러스를 마주친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