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의 24시간

by 문윤범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12시간씩, 두 번 머물렀다. 공항 안에서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봤다. 중국인들도 있었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보였다. 한국인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말하는 러시아인은 보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모스크바에 가보는 것이 꿈인데 아직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때는 러시아로의 무비자 입국도 불가능할 때라 공항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커다란 공항 안에 24시간을 있으면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을 보았다. 핫도그 가게의 젊은 여자와 기념품 가게의 중년 여자. 함께 담배를 나눠 핀 거친 얼굴의 한 남자. 약간 충격이었던 건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는 공항 안에서 흡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장실 앞에 높인 재떨이와 그곳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옛 추억이 떠오를 듯했다.

난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도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했다. 유로와 한국 돈 밖에 없어 환전을 하려했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보이는 어린 러시아인을 붙잡고 물었다. 영어로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영어로 대답하려 했다. 처음으로 영어 단어를 쓰는 러시아인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만다. 결국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쓰빠씨버 세르게이 하라쇼 하리토노프.

그 아이는 스스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대충 알아들었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러시아인들을 보다 그 아이가 영어를 쓰려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어떠한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모스크바에서는 대규모의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때 내로라하는 미국의 밴드들이 모스크바 땅을 밟았다. 메탈리카, 판테라, AC/DC 등등..

북한에서도 한국의 드라마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고 언제든지 그것에 물들 환경 속에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유튜브 채널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러시아인들 중에서도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고프로를 들고 촬영을 하면 손을 흔들거나 다가와 말을 거는 모습도 본다. 스킨헤드도 더 이상 활개치지 않는다고 한다. 유색 인종을 타깃으로 삼아 집단 폭행을 가하는 무리도 보기 힘들어졌다. 러시아는 더 이상 폐쇄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서구화됐다. 서구 문화가 자신들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일 밖에 없다. 그러나 문은 러시아 땅에서 열어줄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키예프를 거쳐라. 이게 푸틴의 메시지일까.

우크라이나는 무슨 잘못인가. 단지 미국의 문화를 동경하면 안 됐던 것일까. 유튜브가 없으면 어디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만나는가. 그때 내가 공항에서 유튜브나 보고 있었으면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통하지 않는 말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튜브는 켜져 있지만 지금 시대는 언택트 시대다.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때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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