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에는 술병이 쥐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그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술 냄새 때문일까. 갑자기 눈을 떠 벌떡 일어설까 겁이 나는 걸까. 전시된 조각품을 보듯 사람들은 관람객처럼 그를 보다 지나칠 뿐이었다. 시선은 그를 깨우지 못한다. 그저 옮겨야만 하는 짐 덩어리일까. 숨은 붙어 있다. 죽은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잠이 든 것뿐이다.
모자를 쓴 남자가 그의 앞으로 다가선다. 한 걸음 두 걸음 소리 없는 발걸음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눈을 뜬 그가 손을 내민다. 모자를 쓴 남자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고맙습니다."
그는 모자 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모자 쓴 남자의 힘을 빌려 일어섰다. 한쪽 손에는 여전히 술병을 쥔 채로 걷는다. 그는 떠났다. 또 하나의 골목길이 사라진다.
그건 전시회였다. 움직이지 않는 행위 예술이랄까. 퍼포먼스 같은 것이기도 했다. 서울의 모든 골목길들이 목표다. 해진은 두 대의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의 도로는 제외했다. 그가 세운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슈퍼에 들렀다. 인스턴트 국물 요리와 콜라 한 병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307호 사람을 처음 본다. 307호 여자는 그를 처음 봤다. 해진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어놓고 나왔다.
"젠장할!"
그리고 욕까지 한다. 그의 집은 극소용돌이가 아래로 내려와 한파를 맞은 지구 한가운데의 도시 같았다. 해진은 무척 열이 받아 있는 상태다. 창문을 열어놓고 나간 건 본인이 아니었나. 담배를 태우기 위해 다시 창문을 연다. 위층에서 소리를 지를까 도로 닫는다. 그는 불쑥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봐야 할 많은 것들과 읽어야 할 많은 글자들.각종 기호 도표를 보지 않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문과를 택했던 그는 그것을 후회했다. 결정이란 갈림길에 선 자신을 갖고 논 신의 장난은 아니었을까.
다음 날 그는 또 술병을 들고 자신의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