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돌았을 때 또 예쁜 길이 나왔고 그 길에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었다. 이런 순간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가끔 아주 큰 길을 만나 광장 한가운데에 서고 커다란 탑, 동상을 우러러보며 가슴 흔들린다. 길을 걷는 건 책 속 문장들을 읽는 것과 같아서, 그래서 여행은 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가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해 새로운 시선으로 창문 밖을 사람들을 본다. 그날은 택시를 탔는데 에이슬링의 술집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차가 끊겨 어쩔 수 없이 타게 됐다. 택시 기사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이 문장들은 어디에서 끝날까. 대충 씻고 눕는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 누웠다. 책을 편다. 눈이 감기며 베게 옆으로 책을 떨어트린다.
카메라로 그 조각상의 사진을 찍어 집으로 돌아와 그것을 봤는데 그때 주인공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작가는 무슨 의도로 그를 뛰게 한 것일까. 광장은 비가 내렸고, 그는 비를 맞으며 뛰고 있었다.
조르지오 알몬디의 '러닝'은 렁위팡의 영화 '이실직고'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도 그 영화를 봤다.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다. 메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 역시 여행자였는데 그녀는 내게 길을 물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회색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난 그녀가 신고 있던 갈색 부츠가 예뻐 보였다.
퀴투볼라 공원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저도 그곳을 찾는 중이에요.'
너무 뻔한 수작일까. 흔해 빠진 멘트에 그녀는 가소로운 듯 웃을까.
"그곳에 아주 예쁜 호수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 호수, 같이..걸을래요?'
왜인지 난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또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조지 79세 서점 앞에서 메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나는 이 여행의 끝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누구도 그들이 헤어지게 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