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속에서 피어난 풍요의 미학
“교수로 중국에 간다고? 그래, 물가가 싸니 돈은 많이 모으겠다.”
한국을 떠나기 전, 이웃 어르신이 웃으며 건넨 말이다.
그때는 그저 웃고 넘겼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2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월 6만 원(CNY 300)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믿기 어렵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학문을 확장하러 이곳에 왔다.
하지만 동시에, 단순한 삶이 주는 정신의 여백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한 달 6만 원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산다.
https://brunch.co.kr/@e3d1ec804a87478/6
한국에서도 나는 늘 선저축 후소비형 인간이었다.
엑셀 가계부를 해마다 갱신하고, 월별 시트에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삶은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도시였다.
그렇다. 교수직도 임금근로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연 소득은 이곳 1인당 GDP보다 몇 배 높다.
중국으로 이주한 뒤, 충분히 잘 벌고 있음에도
나의 지출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한 달 6만 원(CNY 300)—이것이 나의 생활비다.
식비: 4만 원 (교수식당 무료 + 집밥)
커피: 5천 원 (드립커피 원두)
공공요금: 1만 원 (전기, 수도)
생필품: 5천 원 (명절 복지쿠폰으로 대부분 충당)
“그게 정말 가능해요?”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대학교수 복지 덕분이다.
평일 점심은 교수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건강식 뷔페로 해결한다.
식사 한 끼의 가치는 약 4,000원이다.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교수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도보로 20분 거리.
교통비는 0원, 운동은 덤이다.
통신비와 난방비는 학교 복지로 제공된다.
명절마다 지급되는 온라인 쿠폰으로는 생필품을 한 번에 구입한다.
둘째, 물가가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셋째, 미니멀리즘이 체화된 소비 습관 덕분이다.
‘이거 있잖아?’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불필요한 구매를 막는다.
넷째,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을 몰아서 들여온다.
좋아하는 책, 피부에 맞는 화장품, 내과에서 받는 처방약, 그리고 내게 맞는 옷.
이 모든 덕분에, 나의 삶은 ‘가난하지 않은 절제’로 완성된다.
소비를 멈추면, 감정의 낭비도 줄어든다.
쇼핑이 주는 도파민은 짧지만,
만족감은 오래 남지 않는다.
소비가 줄자 마음이 넉넉해졌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기쁨보다 더 큰 행복은,
‘지출이 적은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학자로서 명품을 지양한다.
논문이 나의 명품이고, 실험 결과가 나의 보석이다.
브랜드보다 본질에 집중하니, 삶은 더 단정해졌다.
나는 이제 명품 대신, 시간의 품격을 고른다.
통장이 두둑해지는 기쁨보다,
오늘 하루를 내 손으로 설계했다는 자존감이 더 크다.
한 카피라이터 친구가 내게 말했다.
“박 박사님은 명품 안 사시죠?
그래요, 사람 자체가 명품이잖아요.”
그 말은 칭찬 같았지만, 사실 내게는 다짐이 되었다.
진짜 ‘명품’은 겉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단단히 다듬는 생활의 태도라는 것을.
하버드의 카너먼과 디튼은 말했다.
“연소득 7만 5천 달러까지는 행복이 소득과 함께 증가하지만,
그 이후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한국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은 더 이상 ‘돈의 함수’가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지만,
돈이 많다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돈은 목표를 위한 도구이지, 존재의 이유는 아니다.
나는 지출을 줄였지만, 풍요를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드립백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방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여유를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은 돈이 아니라 집중의 결과다.
가진 것을 세어보는 대신,
지금 손에 쥔 것을 음미할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중국에서 배운 가장 값진 철학이다.
학자는 돈보다 명예를 좇는다.
왜냐하면, 명예는 지식으로 세상을 밝히는 일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아닌, ‘탐구의 기쁨’을 자산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6만 원의 삶은 결핍이 아니라,
나를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자유의 실험’이다.
불필요한 소유를 비워내자,
나의 생각은 더 깊어지고, 글은 더 정제되었다.
한 달 6만 원의 생활비,
그 속에서 나는 매일 풍요를 느낀다.
행복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가져도 충분히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피어난다.
나는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적게 쓰는 삶이 아니라, 가볍게 사는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