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즐기는 사람

삶의 고통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견뎌내기

by 박주영


“박사과정을 통해 저는 고통을 즐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8년 전, 의과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 축하 겸 스승님께 감사 인사를 올리던 사은회 자리에서,
나는 교실 가득한 교수님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때 스물여덟이던 내가 견뎌낸 나날들은,
그 한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낸다.
몸이 고되고, 마음이 지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책과 글 속에서도 타인의 인생을 따라 걸으며 배운다.
어쩌면 고통은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어떻게 그 고통이 ‘자기 사랑’으로 변해갔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이학박사


의과학을 전공한 박사들은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연구한다.

나는 약학을 전공한 뒤, 의대에서 기초의학 연구를 선택했다.

신약 개발을 하고 싶었고, 교수로서 학문을 이어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지식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기초의학 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는 ‘이학박사’라는 이름을 얻는다.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체학, 단백체학 등 생명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의 질병을 해석하는 연구를 하기에 '이학박사' 범주에 속한다.


Ph.D는 Doctor of Philosophy, 즉 철학박사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나는 연구와 함께 인생의 철학을 배워왔다.

실험실에서, 대학원 시절에서, 그리고 지금 교수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내 삶은 늘 “몸과 마음의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스트레스와 우리의 몸맘

“선생님, 오늘 새로 맞출 가운 치수 측정하러 가요.”
“예전 사이즈 그대로 만들어주세요.”
“진짜요? 부럽네요, 사이즈 유지 가능하다니!”

연세의료원에 재직하던 시절,
교직원은 맞춤 재킷가운을 받는다.
그날 동료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나이가 들며 쌓이는 건 연륜만이 아니라, 지방과 스트레스도 함께라는 사실을.

학업과 일, 인간관계의 피로가 쌓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음식에 기대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가고,
식욕은 폭발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호르몬이 흐트러지고,
결국 폭식과 체중증가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몇 해 전 우리 연구실에 인턴으로 왔던 학부생이 있었다.
그는 늘 밝고 단정한 학생이었지만,
대학원 진학 후 몇 년 만에 단체사진 속에서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힘들었구나… 먹는 걸로 버텼겠지.’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안쓰러움과 공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행복해지기 위한 운동

운동은 나에게 가장 오래된 자기 돌봄의 언어다.
지금도 나는 스무 살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는다.
1년 365일 중 360일은 근력운동과 유산소를 병행하며 살아왔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운동은 몸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히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었다.
“교수가 될 사람인데, 슬림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더 신뢰가 가지 않겠니?”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 이후로 운동은 내 삶의 루틴이자 정체성이 되었다.

교수가 된 지금,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교수도 결국 ‘보여지는 직업’이라는 것을.

학문적으로 탁월한 연구와 강의 능력은 기본이고, 외모까지 정돈된 교수는 학생들에게 더 큰 신뢰와 호감을 준다. 어쩌면 운동은 내 연구만큼이나 ‘소통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혼자서도 평생 운동을 잘할 수 있게 배우고 싶어요.”
그는 나를 위해 서킷 트레이닝 루틴을 짜주었다.
나는 자세를 기록하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며 복습했다.
그렇게 쌓은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필라테스, 요가, 스트레칭까지.
나는 ‘배움 → 실천 → 내면화’의 루틴으로 내 몸을 설계했다.


슬기로운 자제력 수업 – 운동, 독서, 글쓰기

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고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 1시간, 독서 30분, 그리고 출근.
운동 후 온몸을 타고 흐르는 엔도르핀의 청량함은
하루를 ‘성공적으로’ 시작했다는 자기효능감으로 이어진다.


운동과 독서를 마친 아침엔, 그날이 이미 충분히 빛난다.
하루의 절반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마음의 균형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운동은 나를 단련시켰고,독서는 나를 확장시켰으며,글쓰기는 나를 치유했다.
이 세 가지 루틴 덕분에 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창의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과학 연구자의 삶에서 몸의 컨디션은 곧 마음의 집중력과 연결된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 HIIT)은 내게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였다.
격렬한 호흡 사이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은 종종 실험 설계나 논문 구상으로 이어졌다.
땀방울이 흐를수록 생각은 맑아지고, 에너지는 연구의 원동력으로 변했다.


운동은 뇌도 단련시킨다. 규칙적인 운동은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즉 뇌유래신경영양인자의 분비를 촉진시켜 신경세포의 생존과 시냅스 기능을 강화한다.
이 덕분에 인지 기능이 향상되고,창의적 사고와 기억력도 함께 확장된다.
운동이야말로 두뇌의 가장 탁월한 영양제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식욕도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기초대사량이 높아져 굶지 않아도 되고,적당히 먹어도 체형은 유지된다.
나는 주말이면 꼭 집밥을 해 먹는다.

스스로에게 사랑을 담아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존중의 첫걸음이다.


운동, 독서, 글쓰기. 이 세 가지는 나에게 절제와 집중, 그리고 회복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몸을 단련하며 마음을 정비하고, 글로 나를 정리하며 다시 세상으로 향한다.
백세시대의 긴 여정에서,지치지 않고 끝까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연습이 바로 이것이다.


백세시대, 있을 때 잘해

요즘은 젊은 나이에 과로로 쓰러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백세시대’를 살아간다.
60세에 생을 마감한다면 너무 억울한 세상이다.
그만큼 오래 사는 만큼, 더 현명하게 자신을 돌봐야 한다.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자는 것.
그 단순한 세 가지가 사실은
우리 인생의 가장 확실한 성공 방정식이다.

몸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삶이다.
이학박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그 단순한 진리를 몸으로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