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병원에서 일 한지는 2주. 한국에서 부터 병원을 자주 옮겨다니다 보니, 이제 새로운 병원에 가면 '각'이라는게 선다. 미국에서 일하는 두 번째 병원이자, 한국에서 부터로 치면 n번째 병원. 큰병원 작은병원 할거 없이 워낙에 옮겨다녀서 일하는 스타일부터 사람들 대하는 것 까지 나름 노련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새 병원이지만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지는 않고 있는데, 같이 일하던 모니터텍이 그 병원 갈 때 댕강 그만두지 말고, 일단 가서 눈치 보다가 더 나은 곳으로 가라고 해서 두 군데 모두에서 우선 근무중이긴 하다. 워낙에 작은 병원에서만 일을 해서 그 병원보다 큰 병원은 처음인데, 사실 조금 힘들다.
미국 간호사로 와서 하지 않고 싶던 일들을 다 하고 있는 병원인 것 같다. 그렇다고 페이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좀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일단, 간호사들은 모두 똑똑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레지스트리, 트레블러 출신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기로 와서 정착해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인계를 할 때도, 깔끔하게 턱 하니주면 턱하니 받아서 넘기곤 한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왔다. 뉴그랫은 하나도 없는데다가 경력이 가장 작은게 아마 1년정도 일거다. 그리고 병동이 커서 사실 누가 일하는지도 모를정도다. 게다가, 숏스텝일 때는 여기저기서 간호사를 공수해 오기 때문에, 레지스트리도 자주오고 타 부서에서도 자주 온다. 그러니 뭐 내 할일만 하면 된다. 인계는 간단하게 주고 환자파악은 알아서.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든다.
다만, 치료과정이 너무 지지부진하고 중증도가 너무 높다.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나이트 근무도 이렇게 바쁜데, 데이는 얼마나 바쁠까 싶을 정도다. 아무리 유능한 간호사들을 데려다 놨다 하더라도, 간호사가 같이 봐주고, 의사한테 푸쉬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워낙 바쁘고 쓸데 없는 업무 로딩이 많다 보니까 의사들의 오더를 거를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같다. 어큣 케어 세팅인데, 정말 일주일 이상 넘게 입원한 환자들이 꽤나 되는데다가, 응급실에는 밀려있는 텔리 환자들만 맨날 10명 20명이다. 이전 병원과 비교 했을 때, 사실 조금 이해가 안가긴 한다. 이전 병원에서는 어텐딩이 못거르면, 컨설트 의사가 와서 거르고, 컨설트 의사가 못거르면, 어텐딩이 거르고 되게 환자 중심으로 치료가 빨리 이루어졌고, 그것도 안되면 차지나 간호사가 같이 개입해서 최대한 빠른퇴원을 도모했다. 미국은 IV 항생제 치료가 필요해도 lab 이 스테이블 해지면 Home health 통해서 지속 치료하도록 하고 2-3일 antibiotics 쓰다가 home health로 계속 받으라 그러고 PICC 라인 갖고 퇴원시킨다. 게다가, 환자들이 대부분 하는 말이 의사는 언제 오냐는 거다. 심지어 입원 후 이틀동안 어텐딩 얼굴을 본 적이 없단다. 이전 병원은 작아서 그런진 몰라도 의사들이 빠릿빠릿하게 라운딩 돌고 오더도 알아서 내놓고 가곤 했는데, 여긴 의사가 보이지 않는데다, 컨설트 의사가 노트작성하고 오더내는걸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과에 따라 환자를 보지 않고 그러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환자를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기록만 보고 오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의사들의 잡 시큐리티가 탄탄한지, 다들 bear minimum 만 하는 것 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더도 하나하나. sepsis로 입원한 환자인데 기본적으로 culture 긁고 xray/ekg 정도는 긁는데(심지어 텔리병동임) 병동와서 xray 찍고, 다음날 하루 종일 환자 잡아뒀다가 ekg 찍고..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절로드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이스하면 몰라, 오더받는데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 그리고 여기도 간호사가 오더낸다. 작은 병원은 그러려니 하지만, 당췌 집에서 오더도 낼 수 있는 시스템이면 왜 당직서면서 오더는 안내시는지요. 그래놓고 어떤 닥터는 노트에 suppose to do blah blah blah but for some reasons nurses doing blah blah blah. 이렇게 적어놨다. please do communication
하나 더, 마그넷 병원이라 요구하는게 너무 많다.
우선 근무 시작 시 '허들'이라고 하는 간단 미팅부터 하는데, 흔히 하는 잔소리 시간이다. IV cap 제대로 바꿔라, 뭐 해라, 뭐 해놔라. 아, 진짜 병원 사람들은 칭찬하면 다들 어디 병나는가 경력직 간호사들 데려놓고 정말 쓰잘데기 없는거 -침상 치워라, 환자 피딩할때 제대로 해라 등등- 잔소리 하느라 10분을 잡아 먹는다. 그리고는 리포트를 주고 나면 당연히 10분정도 오버타임을 하게 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오버타임이다). 게다가 업무 외에 따로가서 강의 들어라(물론 돈은 준다), 매 달 미팅 하는거 참석해라, 뭐해라 이거해라 저거해라 한다. 급여가 진짜 후덜덜하게 많으면 내가 그러려니 하겠는데, 정말 조오금 아주 몇 불 더 많다. 그러니 다시 생각컨데 이 병원이 간호사를 갈아쓰는 한국식 병원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약국에서 전화와서 오더 잘못되었으니까, 의사한테 연락해서 다시 확인해서 내라는거 듣고 한국인줄 알았다. 이전병원은 약사가 알아서 의사한테 메시지 보내서 알아서 조정한다. 여기는 그걸 간호사에게 묻는게, 미국답지 않게(?) 의사들의 권위가 조금 더 센 느낌이다.
그 와중에 장점을 찾아보자면
- 옷 준다. 한 세벌 정도. 대신 스크럽에 아주 커다랗게 병원이름과 소속이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다.
- PCA 들이 밤에 알아서 환자 대소변 다 확인해주고, 바이탈 다 돌아주고, 기저귀 다 갈고, 침상 목욕도 다 해주고, 잡일 다 도와준다. 콜벨도 우선 PCA한테 먼저 간다. 그러나 그것도 PCA 나름, 결국 간호사가 다 확인해야 하긴 한다. 그래도 이전 병원보다 몸은 좀 편하다. 짬나면 다들 엎드려서 쪽잠도 조금씩 잔다.
- 한국사람들 많다(많다고 해도 전체에서 한 5프로 정도). 장단점이 있는데, 지금 와서는 그분들이 하는 말을 못알아듣는게 더 나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새 병원에서 나의 전략을 꼽자면
- 우선 일은 열심히 최선을 다할거다.
- 차지에게 얕보이지 않을 것. 이 병동에 최근에 들어온 풀타임이 나 밖에 없어서, 지금 모두들 나를 주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럴 때, 얼렁뚱땅 실수하면 아주 크게 책 잡히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널싱은 toxic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 겉으론 좋아보여도 알아서 낄데 안낄데 구분해가면서 해야 한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실수 없이 해 나갈 생각이다. 다행히 나이트는 시간이 많다.
- 계속 주변의 더 좋은 병원을 aim 해 볼 것 ; 병원들은 다 똑같다고 치면 그래도 돈 많이 주는 병원이 낫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해야 할 것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은데, 그에 비한 시급이 솔직히 눈물나는 정도다. 나는 급한 마음이라 일단 닥치는대로 잡 오퍼를 수령했지만, 출퇴근만 왕복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다, 내가 매번 들이는 힘든일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돈을 더 받아야겠단 생각이 아주 불끈불끈 든다. 그러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계속 다녀볼 것. 그게 아니면 지금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이전 병원에서만 일하고 지금 병원은 서서히 정리하지 싶다.
미국 간호사의 현실을 다시 직시한 느낌. 그래 나 간호사 하기 싫어 여기왔고, 여기서 한국처럼 일 안하려고 왔는데, 정말 다시 한국으로 간 느낌이라 숨이 턱턱 막힌다. 우선 내가 오리엔테이션 기간만 겪어서 그럴 순 있는데, 부디, 잘 적응하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