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한국에 온 것 같지
이틀 연속 콜식을 썼다. 미국 병원이라고 다 같은 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한 달 정도는 버텨보려고 꾸역꾸역 일을하고 있었다.
새 직장을 가게 되면 언제나 힘들다, 더구나 나는 이번 직장이 미국에서 두번 째 직장. 2주차 부터 어라 이상하다 하는 각이 섰는데, 딱 한달이 된 지금 여길 그만둬야 내가 살거 같은 생각이 스믈스믈 온다. 이런 생각이 든 병원은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한 세번째 정도 된다.
이틀 전 마지막 쉬프트는 정말 와일드했다. 4명의 텔리 환자를 보는데, 그 중 한명이 출근하자 마자 혈압이 떨어졌다. Rapid Response 를 부르고 1-2시간 정도 데리고 있다가, 결국 중환자실로 이송했다. 그 와중 다른 환자는 시술을 끝내고 올라왔었고, 다른 환자들 약은 자연스레 딜레이, 혈압떨어진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자 마자 입원장 티켓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얼마 안되어 그 입원은 취소되고, 옆 병동에서 rapid response 가 있었던 환자가 내게로 왔다.
자, 이 모든 사단은 이 병원에 Step Down Unit 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병동에 있는 환자들의 중증도는 올라간다. 중환자실로 입실할 어느 조건에는 일치하지 않으니, 그 경계선에 있는 환자들이 Telemetry 병동에서 중환자실로 가길 기다리거나 혹은 기적처럼 좋아지길 바라면서 기다리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를 4명을 본다. 한국에선 환자 15명 보는데 4명보는게 뭐가 그리 많나 생각하며 불평할 수 있는데, 캘리에서의 법이 그렇다 스텝다운 수준은 3명을 보게 되어있다. 게다가, 한국의 15명과 다르게 미국의 4명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는 토탈케어다. 그와중에 NG tube 있고 계속 체위변경하고 수시로 콜라이트 울리고 하다보면 정말 한국 20명 보는거 보다 더 진을 빼놓는다. 게다가 환자들이 의식이 있으면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고 납득이 가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약 하나 주는데도 30분이 걸리는거다.
이는 환자 안전문제와도 직결된다. 내가 중환 4명을 보는데, 그 중 한명을 실수로 놓치게 된다면 safety 이슈가 터질 수 밖에 없다. 고로, 법적으로 환자 안전을 위해서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을 정해놓은게 이 주의 법이다. 그렇게 딜레이가 되면, 자연스레 다른 환자들은 적절한 시간에 약제를 받지 못한다. 내가 이 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라 한국같다 라고 생각한게 몇번 있었는데, 그게 들어맞다고 자꾸 확인시켜주는 거 밖에 안되었다.
1. 환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환경
오더도 간호사가 넣고, Rapid Response 에 혈압이 떨어져도 ICU 코드 널스가 와서 그냥 상주하면서 의사처럼 오더를 낸다. 물론 의사랑 직접 연락을 하겠지만, 문자로 한다. 그럼 할 수 있는게 제한적이다, bolus 주고, 알부민 주고 근데 이미 septic shock은 진행되고 있고. 그렇게 병동에서 2-3시간을 체류했다. 이거저거 하면서 병동에서 지체할 시간에 빨리 ICU로 옮겨서 승압제를 썼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 환자 결국 ICU 가서 6시간 뒤에 코드블루가 났다. 이 과정에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볼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빠른 처치가 필요했었다고 생각이 든다. 환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환경, 물론 간호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가 워낙 잘되어 있어서 동네에서 고객만족도 1등 병원이라는 간판을 볼 때 마다 어이가 없다.
2. 간호사를 갈아쓴다.
내가 가장 극혐하는 회사들이, 고객 만족만 신경쓰고 직원만족은 신경 안쓰는 회사다. 이 회사가 딱 그런 회사다. 환자들에게는 딜레이 되어서 미안하다고 바우처까지 주는 병원이지만, 정작 직원 만족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better place를 만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게 결국 환자에게만 치중된다. 물론 환자 만족도 중요하다. 그러나 간호사 만족도가 보장되지 않는 이런 병원에서 환자 만족도를 올릴 수 있을까. 노조도 없는데다가, 이제는 간호사실 마저 없애고 그걸 병실로 바꾸겠다고 하는 마당이다.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당연히 급여다. 요구하는 것에 비해 급여가 터무니가 없는데, 환자 생각하면 일을 대충할수가 없는 구조다.
3. 근데도 오래 일하는 간호사들은 뭔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쪽 컬쳐가 아시안 + 백인이다. 다들 크게 목소리 내지 않고 일하는 느낌이다. 병원 가면 나랑 맞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딱 느껴지지 않나. 이곳 사람들은 드라마는 없지만, 그냥 자기 할일만 하고 퇴근하는 느낌. 그리고 부당한게 있어도 뭐라 이야기 하기 보다는 일단 하는 스타일로 느껴졌다. 뒤에서 자기들끼리 욕할지언정, 매니지먼트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거나 뭔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게 느껴지고 그들도 겉으로는 뭔 일있음 이야기 해라 하는데 거의 들어줄 생각이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여기가 비영리 병원이라 돈나오는데가 없어서 그런가, 있는데서 있는 힘껏 쥐어짜서 뭔갈 하는 느낌. 집이라도 가까우면 가까우니 다니지 하겠는데, 나는 심지어 집도 멀다.
퇴사는 삼세판, 지금은 결정해야 할 때.
한 달은 어찌저찌 참아보자 그래서 참아봤는데, 쉬프트를 끝나고 집 갈 때 굉장히 기분나쁜적이 많았고. 일부 모닝 쉬프트 널스들이 한국처럼 잘난척 하면서 가르치려 들때 - 그리고 그들은 일은 더 넘겨줄 때 - 굉장히 언짢았다. 한국은 그런 사람이 10명중 7명이라면 여긴 10명중 2명인데, 그 2명도 이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를 참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인데, 계속되면 매니저에게 말을 할 예정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게 Unpleasant 하고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는거라면, 과연 일을 하는게 맞는걸까. 우선은 여러가지 옵션을 보고 있긴 하다만 콜식 쓴걸로 내 멘탈이 회복된다면 괜찮을 텐데,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growing pain인 것인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인가 잘 판단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