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by 김승민

나는 기독교와 무관한 가정에서 자랐다. 성장하는 동안 기독교인 친구도, 신앙을 논할 지인도 없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 생긴 신앙은 언제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여정이었다.


이런 환경 탓에, 마음 한구석에는 늘 신앙의 양육자에 대한 갈망이 자리했다. 신앙의 길에서 나는 늘 고아 같은 느낌을 안고 살았다. 나를 떠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 주며, 내 선택의 의미와 책임을 가르쳐 줄 누군가를 바랐다.


신앙의 고아였기에, 나는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 집안에서 어떻게 신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술·담배를 하던 기존의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신앙인으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등 정답이 없는 고민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스스로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 없이 자란 아이에게 결핍이 남듯, 나 역시 신앙 안에서 그런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다행히 지금의 아내는 내 신앙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신앙의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고,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이 옳다고 믿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나는 그 실패를 만회하려 애썼고, 지금도 그 실패가 완전히 만회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유명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차후 목사가 되는 길에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약간의 배신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는 가진 것 10개 중 7개를 내어놓았고, 그들은 100개 중 70개를 내어놓았으니, 우리 모두 가진 것의 70%를 내어놓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남은 30%의 크기가 달랐을 뿐이었다. 가진 것의 절반 이상을 내어 놓았다는 서로의 처지와 관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던 모든 순간들이 결국은 나만의 ‘안전벨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보호나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직접 부딪히고 고민하며 쌓아온 삶의 노하우가 나만의 안전벨트가 되었다. 덕분에 어떤 불합리한 시스템이나 모순적인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는 힘도 생긴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그런 불합리한 시스템에 적응하거나 모순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무척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런 버거움을 느끼는 내가 문제인지, 아니면 그런 버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인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사가 되길 바란다. 비록 내 안전벨트가 아직 단단하지 않더라도, 나와 같은 신앙의 고아들이 삶과 신앙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방황할 때,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안전벨트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가며, 언젠가는 그들에게 든든한 안전벨트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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