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인 책임은 개인의 양심보다 앞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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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지아의 아버지가 350억 원 규모의 토지를 두고 형제들과 분쟁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이 부각되자, 이지아는 21일 소속사를 통해 할아버지 김순흥의 친일 행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으며, 2011년 관련 기사를 접한 뒤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 자료를 확인했다고 그는 밝혔다. 할아버지의 국방헌금 헌납 기록을 확인한 후,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고 판단했고,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또한, 350억 원대 상속 분쟁과 관련해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며, 해당 토지가 일제강점기 취득된 재산이라면 국가에 환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지아의 사과는 후손이 선조의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단지 유명한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도 알지 못했던 가족의 법적인 분쟁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것이 정당한지, 그리고 사회적인 압력에 떠밀려 사과해야 하는 이러한 분위기가 정상적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지아가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안을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는지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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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은 조상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하는가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 지난 2023년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과 피해자들을 만나 “제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5·18 학살의 주범”이라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날 5·18 유족·피해자들과 만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 독재에 맞서다 고통을 당한 광주 시민께 가족들을 대신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우원의 가족들은 그의 행동을 약물 중독과 정신적인 문제로 몰아가려 했다. 전우원의 행동이 사회적인 정의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가족 내부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 사례는 ‘과연 후손이 선조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역사적인 과오가 분명한 경우에도, 그것을 후손이 직접 사과해야만 하는가? 이는 단순한 역사적인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문의 명예와 사회적인 정의 중 무엇을 더 중요한 가치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 배우 이지아의 사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전우원의 경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우원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조의 과오를 밝히고 반성한 것이었지만, 이지아는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압력을 받아 사과를 해야만 하는 분위기에 놓였다. 그는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왔으며, 개인의 삶과는 무관한 문제로 인해 사회적인 여론의 압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사과란 본래 자발적인 행위여야 하지만, 공인의 경우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지아가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고 사과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선조의 잘못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인 책임을 요구받고, 사과하지 않을 경우 비난받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타인의 강요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공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내면적인 신념보다 대중의 기대에 맞춘 행동을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쩌면 이지아 스스로도 자신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양심의 자유가 목숨만큼 소중한 권리이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그가 할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해프닝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사회가 후손에게 부당한 도덕적인 책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문 중심적인 도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선조의 과거를 덮으려는 경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손이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비난을 받는 반대되는 태도를 보인다. 이지아의 사례는 이러한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도덕적인 책임은 행위자에게 있어야 한다. 선조의 과거가 어떠했든, 그것은 후손이 결정하거나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이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후손이 반드시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나치다. 이는 연좌제적인 생각방식의 잔재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 자식은 부모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고발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효도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부모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식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발해야 하는가? 이는 단순한 윤리적인 고민을 넘어, 가문과 사회의 정의 사이에서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전우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할아버지 전두환의 과오를 고발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이를 두고 일부는 "가문의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자신을 길러준 부모와 가문을 배신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결국 그는 가문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졌고, 강한 사회적인 압력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지아의 사례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는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행동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과거를 외면하면 비난받고, 인정하면 또 다른 논란에 휩싸이는 딜레마에 놓였다.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부모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문의 유대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는 지나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사회가 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때,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강제적인 도덕적인 연좌제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가문이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반성해야 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지아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후손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강요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그는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 사과가 과연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역사적인 과오에 대한 반성과 책임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특정 개인에게 강요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자유롭고 성숙한 사회는 도덕적인 폭력을 거부하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적인 책무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후손이 선조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은 책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하며, 이는 자유롭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