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들과 두콩쌤의 고군분투 밥값일기
5월 15일, 우리의 영원한 스승인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스승의 날. 학생때는 '스승=선생님' 이라는 단순한 공식이라 수업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께 이벤트를 해드리는 날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나서 이 단어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인가?'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이 안나오는 것은 스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열정과 무게가 전혀 가볍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을 지나가는 대화자리에서나 수업에서 말을 줄이고 상대의 말을 많이 듣게 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이 내 '생각'을 온전히 담지 못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말에 내 생각을 고른 뒤에 말로 하는 것이 편해진 경험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스승, 부모, 결혼.. 막연히 멋지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취업 후 이제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의 멋'짐'이 책임감이라는 '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짐이라는 것이 관용적으로 무겁고 벅차다 라는 의미를 담고있기도 하지만 단순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짐을 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위한 '짐'은 열정과 책임감이기 때문에 이런 짐 하나씩 든 선배님들, 친구들을 보면 이젠 그렇게 멋져보인다.
지난 주말 만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거나 결혼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결혼은 가정을 이루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안된 것 같다고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내 자신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보고자 노력을 해보고 결혼을 차차 생각해야지 싶었다. 부모라는 단어에 못지않게 '스승'이라는 단어도 당장 나의 현재보다는 미래의 지향점에 가까웠다. 두 단어의 하위요소에 들어갈 만한 교집합 요소가 많지만 올해 스스로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든 '지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장 해야할 일이 있을 때, 사소하게는 아침 출근을 할 때도 부랴부랴 나서기 보다 미리 가기, 미리 제출하기 등이 나의 불안을 낮춰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스승이든 부모든 아내든 내 감정과 내 생활은 내가 책임져야 함께하는 사람과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 14일에도 8시 되기 전 학교로 출발하기 목표를 세우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부랴부랴 나와의 목표를 세우기 위해 출발하여 8시 14분에 도착했다. 교실에 가니
"(깜짝 놀라며) 으아아아! 선생님~~"
"왜?"
"(자리로 돌아가며) 깜짝 놀랐잖아요~~~"
우리반 귀요미가 지나간 흔적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이렇게 꾸며두다니 너무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전날 선생님을 생각하며 쓴 편지라니, 아이들의 꾹꾹 눌러쓴 글자에 괜시리 마음이 울컥했다.
그 중에서 공부를 어려워하는 딸래미가 쓴 글이 마음에 들어왔다
"제가 못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괜찮다고 해서 울컥했어요"
그 당시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이에게 이렇게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니 다시금 교사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무심결에 한 말이 가슴에 들어와 감동이 되기도, 비수가 되기도, 상처가 되기도 하겠구나.
다시금 말의 무게를 깨달았던 하루였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의 프로필을 하나 둘보니 제자들과 환히 웃는 사진들이었다.
과외했을 때나 충남에서 근무할 때 스승의 날 이벤트를 받으면 이런마음이 들었다.
'역시~ 나는 좋은 선생님인걸 너네가 아는구나?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 나 꽤 괜찮은 선생님인가보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좋은 선생님인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 '선생님' 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진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매스컴에 보면 부모님의 사랑을 주제로 많은 컨텐츠가 나오지만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사랑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안나오는 것 같다. 내리 사랑이라고 내려가는 사랑은 말할 여지 없이 참 감사하지만 동시에 나도 자녀로서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사랑하는 마음도 참 크다는 걸 종종 느낀다. 이처럼 아이들도 내게 주는 이 마음들이 내가 아이들의 선생님이기 때문에 오는 사랑임을 안다. 그래서 참 감사한 하루였다. 우리 아이들의 담임이라는 것이.
50년간 보관된다는 생활기록부의 담임란에 처음 내 이름이 적히고 도장을 찍는 그날, 퇴근 후 마음이 울렁이며 벅찼다. 내 이름을 걸고 누군가의 삶에 의미있는 기록을 하는 직업이구나.
스승의 날을 맞이해 내 수업관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장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에 맞는 역량중심 교육'을 항상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농담삼아 항상 말씀해주셨다.
'역량있는 교사가 살아남는다, 2022 교육과정은 초등교사가 참 힘든 교육과정이다.'
새롭게 나오는 AI기기들이나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시고 그걸 교실 현장에 적용해보며 끊임없이 연구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개별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다.
흔히 말하는 요즘 세대 교사로서 선생님의 열정이 처음에는 너무 벅차고 힘들었지만 막상 나도 새롭게 나오는 AIDT나 에듀테크 기술들을 먼저 활용해보고 수업하는 걸 보면 어느새 열정의 씨앗이 내 마음에도 싹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괴로운 순간이 많다. 드라마를 봐도 '이 장면은 오 이 수업 도입에 쓰면 좋겠는데?', 어디 놀러가도 '오 이 거 미술 상상화 수업에 참고자료에 넣어야지' 라는 생각이 가득찬다. 어디 말할 수 없는 직업병인 것 같다.
수업에 점점 공을 들이고 연수를 다니면서 나의 일과 나의 삶의 분리가 나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Work & Life Harmony 하기로 선택했다.
나의 학교생활도 소중한 내 24시간 중 8시간이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시간이 내 개인 삶의 행복이 되도록 조율하기로 했다. 힘든 날에는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위로받기도 한다. 개인적인 고민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맛있는 점심급식을 먹다보면 주말에 가족에게 이 음식을 해줘야겠다! 이 조합으로 먹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사회시간에 배운 대구 국가유산이나 경북 유산들을 보며 주말 여행장소를 잡기도 한다. 혹은 동학년 선생님들과 수업연구를 하면서 '자아실현'이라는 내면의 최고 도파민을 얻기도 했다. 또한 관심있는 교육청 연수에 참여하면서 '연구하는 교사'라는 꿈이 생겼다. 2차 면접준비하면서 교직관을 고르라고 했을때 5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열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5글자, '별빛연구원'을 생각해냈다. 금속 가열실험에서 고유의 빛을 내는 금속처럼 아이들이 내뿜는 자신만의 빛을 '연구'하고 키워줄 수 있도록 하는 교사.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고 수업을 개발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꿈을 닮기 위해 나의 사적인 시간에 본 내용들 중 좋은 것이 있다면 수업자료로 넣기도 하고 계기교육 자료로 넣기도 했다. 이런 수많은 시냅스 연결들이 나의 요즘 행복인 것 같다.
이런 생활이 대단한 스승이 되려는 목적지향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내 삶을 사랑하고 주변에 너그러움과 따스함을 나눌 수 있다면 스승의 'ㅅ'정도에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