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3
고등학교 첫날, 우리는 키 순서대로 줄을 서다 처음 만났다. 내 앞에 서 있던 수줍음 많은 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운명처럼 첫 짝꿍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만남이 길고 긴 오해의 시작이 될 줄은.
나는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편이었고, 그는 묵묵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나는 그것을 ‘조화’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어느 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내 제안에 그는 늘 모호하게 거절했다. 이유를 물으면 표정이 굳었고, 나는 묻기를 멈췄다. 그의 침묵을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돌리며 관계의 불편한 신호들을 외면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패턴은 같았다. 그가 연락을 끊으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대화는 늘 그의 서운함으로 끝났다. 기억나지 않는 일로 사과해야 했고, 관계는 진통제처럼 연명됐다.
한 번은 너무 오래 소식이 없어 무작정 그의 집 근처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나갈 수 없어.”
훗날 그는 그 일조차 다시 꺼내며 나를 탓했다. 나는 또 사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학창 시절, 네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와서 질투가 났어.
그리고 떡볶이 먹자고 할 때, 사실은 용돈이 없었는데 네가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권유해서 불편했어.”
그 순간, 내가 믿어온 우정의 기억이 산산조각 났다. 그의 침묵 뒤에는 비교에서 비롯된 작은 상처들이 숨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정말 그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내 방식만을 고집하며 그 관계를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지막 통화에서도 나는 평범하게 물었다.
“어디야?” 그리고 평소처럼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며칠 뒤 돌아온 건 ‘왜 그렇게 다짜고짜 묻느냐’는 장문의 문자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사과 문자를 보냈다. 그것은 관계를 끝내기 위한 사과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지키려 했던 건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한 사람이 참고, 배려하고, 사과하는 우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친구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건강한 관계가 무엇인지 알려준 반면교사였다.
관계를 끝내는 것 역시 때로는 나 자신과 상대에 대한 마지막 배려일 수 있다.
나는 그 아픈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건강한 관계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당신의 삶에도 ‘불편하지만 거울이 된 친구’가 있나요? 그 관계는 어떤 배움을 남겼나요?
다음 주 목요일,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연재를 구독하시면 새 글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