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5
우리 동네에는 복합적 어려움으로 학교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있다. 그곳의 센터장님과 나는, 과거의 협업 파트너이자 지금은 소소한 안부를 묻는 동네 지인이다.
나는 그녀를 '참 괜찮은 분'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그녀의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나는 그 '괜찮음'의 실체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진짜 직함은 '센터장'이 아니라, '골목을 누비는 활동가'였다.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끝나면, 온 동네가 그녀의 사무실이 되었다. 꽃집에서 무보수로 꽃을 다듬고, 카페 사장님과 수다를 떨고, 밥집 주인과 안부를 묻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마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발걸음은, 훗날 아이들을 위한 든든한 '자원'을 모으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들은, 기꺼이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었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내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그녀는 그렇게 모은 동네의 마음들을 엮어, 무려 70명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응원밥상'을 차려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힘은,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아닌, 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함에 있었다.
한여름에도 늘 두꺼운 옷만 입던 아이가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매일 센터를 찾던 성실한 아이였다. 그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여름옷 몇 벌을 사서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너무나 기뻐하며, 한동안 그 옷만 입고 다녔다고 했다.
그녀는 말로만 하는 복지가 아니라, 한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진짜 '돌봄'을 실천하고 있었다.
책상이 아닌 골목에서, 서류가 아닌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사람.
그녀를 볼 때마다 궁금했다. 저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 그녀의 에너지는 멈추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은 온전히 아이들을 향했다.
나는 그날,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을,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짜 어른의 얼굴을, 바로 그 골목에서 만났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골목을 누비는 활동가'에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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