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4
그 사람은 나의 등대였다
강사 시절 만났던 A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유치원 원장까지 지낸 베테랑이었고, 강사 모임에서는 늘 중심을 잡아주는 든든한 활동가였다. 그녀는 유독 내게 호의적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강의에 참관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단단한 연대로 이어진 사이였다.
내가 강사 생활을 그만두고 복지관에 소속된 후에도,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상한 스터디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와의 대화 속에 ‘스터디 모임’이라는 말이 불쑥 끼어들기 시작한 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내가 거절할수록, 그녀의 권유는 점점 집요해졌다. 예전의 그 온화한 모습 대신, 무언가에 홀린 듯한 날카로운 열기가 느껴졌다.
“김 선생님, 이건 꼭 들어야 해요. 진짜 인생이 바뀐다니까요.”
나는 기관 평가와 야근을 핑계로 계속 그녀를 피했다. 그 낯선 열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덫
그날 식사 약속을 잡은 것이 실수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낯선 여자가 있었다. 불편한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보며 A선생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A선생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여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선교사님! 언제 오셨어요?”
'선교사님?'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완벽하게 계획된 함정에 걸려든 것이었다. 식사 내내 대화는 온통 나에게만 집중됐다. 두 사람은 시종일관 친절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내 영혼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찾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달라져 있었다
그 끔찍한 식사 이후,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예고 없이 회사로 찾아오고, 심지어 내가 없을 때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문안까지 다녀왔다. 소름 끼치는 과잉 친절이었다. 예전의 그 프로답고 신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변해버린 그녀가, 나는 무서웠다.
나는 그녀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그 후.
나중에야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생업마저 그만두었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그토록 똑똑하고 현명했던 사람이, 저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인간의 이성이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그 일 이후, 나는 사람을 보는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누군가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 때, 그 따뜻함에 무작정 마음을 열기 전에, 먼저 '왜?'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이다..
모든 관계에는 대가가 따른다. 돈이든, 마음이든, 어쩌면 영혼이든.
나는 이제, 함부로 마음의 빚을 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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