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man Librar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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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심이 꽃피운 인연과 성장] 글에는 관장님과의 만남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관장님의 멋진 모습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 잠시 등장했던 복지관의 관장님. 그분과의 만남은 내 삶의 항로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그 인연 덕분에 복지관의 일원이 되었고,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리더로서 관장님의 가장 큰 힘은 '포용'이었다. 그녀는 마치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장인 같았다. 조직원 개개인의 이력서나 스펙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 사람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톱니바퀴를 발견해 냈다. 그리고는 각자의 강점을 찾아 힘껏 밀어주며,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들이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도록 이끌었다.
관장님은 사람의 '쓰임'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는 리더였다. 그녀의 눈에는 모든 직원이 저마다의 빛깔을 가진 보석이었다. 누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누구는 성실한 끈기로, 또 누구는 따뜻한 공감 능력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그 강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나 역시 그 부드러운 리더십의 수혜자였다. 그저 평범한 '일개 강사'였던 내 안에서, 그녀는 '사회복지사'의 가능성을 발견해 주었다.
"김 선생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그 힘을 더 넓은 곳에 써보면 어떨까요?"
그녀가 건넨 믿음과 기회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나를 깨우는 주문이었다.
관장님의 따뜻한 지지는 비단 나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의 강점 또한 일깨워 주었고, 성장이 더디더라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가졌다. 세월이 흘러 당시 동료들을 만나 관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하곤 한다.
"홍 관장님이 계실 때가 참 평안하고 좋았지."
수년 전 나는 안부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얼마 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함께 근무하던 시절의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하나둘 늘어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관장님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었지'
'마자, 그런 일이 있었지'
그리고 통화가 끝날 무렵, 그녀는 내게 또 하나의 힘이 되는 말을 건네셨다.
"김 선생님은 참 꾸준히 안부를 묻고 사람을 챙기는 달란트가 있나 봐. 그거, 정말 귀한 재능이야."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기억이 흐려지는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사람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발견해 내는 리더였다. 내 작은 안부 전화를 '귀한 달란트'라 불러주는 그 따뜻함. 그녀는 여전히 나의 관장님이셨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누군가를 이끄는 것이 채찍질과 다그침만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리더십은 각자의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이 더 밝게 타오르도록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녀에게서 배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익숙한 길 위에서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내 삶의 페이지를 넘겨주고, 새로운 풍경을 선물해 준 사람.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리더가 되고 싶다.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인생의 큰 은인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다음 주 목요일 저녁 8시,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연재를 구독하시면 새 글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