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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페니 Apr 18. 2024

마음을 닦아 주는 사람들, 세신사

한 주의 피로를 그대들에게 

나는 주말마다, 엄마랑 함께 사우나를 간다. 항상 사람이 덜 붐비는 오전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데, 바로 세신 때문에 종종 일찍 가게 된다. 

 세신 선생님을 나, 우리 엄마는 여사님이라 부른다. 그 여사님은 세신 서비스로 인해  육체적으로 고되고 지칠 법도 한데도 지친 표정 하나 없이 그저 운동을 열심히 하고 땀 흘린 보람된 사람 마냥 개운한 얼굴로 밝게 웃으며 늘 손님들을 맞이하여 주신다. 편안하게 말이다.  그래서 나도 어느샌가 여사님의 팬이자 고객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사실, 미용실을 가도, 네일숍을 가도 거기 있는 매니저분이나 내 머리를 만져주시는 원장님하고도 안부 인사 외에는 그렇게 수다스럽게 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그냥 잠을 잔다던지, 혹은 그냥 묵묵히 하시는 걸 바라본다던지, 내가 그렇게 말이 없는 편은 아닌데,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 하고는 그렇게 말을 안 섞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에 있을 때의 나는 좀 의외로 과묵한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반면 우리 엄마의 경우 어디를 가도 다 5분 이상 엉덩이만 붙이고 있을라 치면 주변 사람들과 다 말을 터고 지낸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엄마가 자주 가는 사우나, 미용실, 그리고 함께 다니는 네일숍의 선생님들은 모두 엄마를 다 기억하고 그 수많은 고객들 사이에서 엄마의 이름까지도 외우는 정성을 보여 주신다. 



 하루는, 세신을 받던 중 여사님이 말을 걸었다. 요즘 왜 이렇게 뜸하게 오셨냐며 하긴 최근 들어 강북으로 이사 간 뒤로는 자주 오기가 좀 힘들어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사정을 워낙 잘 아시다 보니, 안부를 물어 오신 거다. 나는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다소 어색하게 이야기 몇 마디 나누기 시작 했는데, 이상하게 여사님은 그 뒤로 쉴 새 없이 말을 하시는 거다. 근데 그 말이 불편하거나 듣기 싫은 게 아니라 순간, 내 귀에 백색 소음 마냥 뭔가 지금 세신을 받으면서 정신이 어디엔가 편안함에 집중이 되게 만들어 주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러자 점점, 여사님이 이야기하는 말 들과, 내가 하는 말들이 서로 어우러져 어느새  나는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내 말이 잘 들릴지, 혹은  내 말을 이해하고 있을지 등등의 잡다한 생각 따윈 접어 버리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은 거 같았다. 




 맞았다. 전에 없이 속이 시원하게 내 안의 말을 쏟아낸 느낌, 사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내 주변인들에게  대화를 하면 그들은 다 말은 알아듣고 심지어 내 마음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게 결국은 "험담"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희한한 게 그 말은 꼭 그 사람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저 어떤 대화도 안 하게 되고 스스로 단절을 한다. 또 그렇다고 답답하다며, 이 이야기를 엄마나 동생 그리고 친구한테 하기도 애매한 게 그들은  앞뒤 내용 맥락을 전혀 모르니 하나부터 설명하는 게 더 힘이 들뿐이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얼마나 삭혀 댔는지, 그저 내 속은 홍어보다 더 삭아 있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였나, 여사님의 세신 손길에 시원함을 느끼면서 마치 걸쭉하고 다디단 막걸리가 홍어를 만나듯 전혀 나의 일을, 내 생활을 모를 거 같았던 여사님 에게 내 속을 다다다다 뱉어 내고 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대화를 이어가면 갈수록, 대화가 점점 맛깔나고 나는 신명이 나서 수다쟁이가 되어 버린다. 여사님은 내 마음을 다 이해해 주고, 어쩜 이렇게나 말이 잘 통할 수도 있을까? 라며 신기해하기도.. 어떤 이해관계도 없어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엄마가 왜 밖에 나가면 수다쟁이가 되는지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또 엄마는 어딜 가도 다 단골이 되는 마법과 같은 말솜씨를 가질 수 있었는지도..

 외로웠을 거라고, 내 마음을 터 놓고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또는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편견 없이 나를 바라봐 주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엮이지 않은 사람과의 돈독한 관계가 이리도 명쾌하게 내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고, 속을 후련하게 비워내 버릴 줄이야.

여사님 앞에서는 이미 내가 벌거벗은 상태여서 그런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거리낌이 없었다. 

 



 내일모레면 또 주말이다. 엄마와 함께 사우나 가서 신나게 수다 떨 생각 하니 벌써부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된다. 나도 어느새 여사님 앞에 가면 수다쟁이가 되어버려 눕자마자 한 주 내내 있었던 회사 이야기부터, 주식이야기, 한 주 내내 있었던 네이버의 가십 기삿거리부터 사건 사고까지, 

"여사님 진상 손님은 없었어요?" 라며 나 역시 한주 내내 진상 손님 하나에 속이 상한 이야기까지 이야기보따리 가서 다 풀어 버릴 거다. 그리고 내 속의 묵은 한 주간의 스트레스도 모두 털어버리고 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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