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무력감 그 중간 어딘가에

탈출방법론 : 고가의 대학원 등록금과 도피성 유학

by 머니페니

나는 국내 Top3에 드는 상위권 대학 문과 졸업생이다. 사실 더 좋은 학과를 희망했지만, 어정쩡한 나의 성적이 미래의 투자를 위한 학과 선택 보단, "학교"를 더 보기로 한 내 나름의 나의 가성비 좋은 선택이었다.


서어서문학과. 영문과도 국문과도 아닌, 졸업하고 나서 스페인어를 쓰면 얼마나 쓸까 행여나 유럽여행 다닐 때나 좀 쓸려나 싶긴 하지만, 현재 내가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유일한 대학. 학교 다닐 때도 공부 열심히 안 했다. 그저 매일매일을 소개팅이니, 클럽이니 동아리니 몰려다니며 허송세월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보니, 노는 것도 겨우 1년 반 정도? 이젠 취업 준비생으로 주변 동기 놈들 준비하는 거 보니 죄다 대기업들이다. 분명 같이 놀았는데, 언제 나 몰래 저런 스펙들을 쌓은 건지, 뒤늦은 발버둥을 치면서 나는 새벽에 어학학원을 밤늦은 시간에는 금융자격증을 그리고 주말과 이동하는 지하철에서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필요한 자격증을 가지기 위해 반년 가량을 열심히 투자했다. 평소에 찬찬히 공부했으면 좋았겠지만, 뭐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할까?

나는 우리 학교 이름값 덕에 가볍게 서류전형정도는 거의 프리패스라 기본 자격만 갖추면 되고 면접만 잘 보면 되겠다 생각을 했다.


몇 번의 낙방을 거쳐, 겨우겨우 대기업 계열사 자산운용사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 운 좋게 대기업 계열사에 힘들게 취직했지만, 해당 자산운용사의 그해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내가 속한 우리 부서가 해체 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나마 원래 있던 멤버들은 타 부서에서 모셔가고 데려가고 했지만, 갓 들어온 신입을 챙겨주는 부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닌 지 겨우 1년 반 만에 강제 퇴사를 해야만 했고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왔다.


대학 졸업 후 놀았던 백수로 보낸 시간 1년여, 그리고 1년 반 만에 돌아온 다시 백수생활,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이제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빌곳이라곤, 나의 학교 타이틀이었는데, 그 마저도 이젠 무색해져 가고 있었다. 유학이라도 갈까? 가만 보니, 내 주변의 동기들 몇몇 은 유학 가서 전공을 바꾸고 다른 직종으로 이직했다는 말도 들었고, 주변에 다른 선배는 돈이 좀 많이 들긴 해도 타이틀은 근사한 학교로 대학원을 진학하며 이력을 다듬었다는 말도 들었다.


부모님께 상의를 한 후, 일단 대학원을 진학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학원 이 정도면 괜찮겠지? 우선 부모님도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나의 의지를 굳이 꺾으려 하진 않았지만 다소 비싼 학비는 부담스러워하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동생만 의대 보내고 나에겐 투자하지 않았다는 감정호소! 부모님도 하는 수 없이 동의하시면서 나의 대학원 학비를 마련해 주마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진학한 대학원은 학문이 목적이 아닌,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의 화려한 경력에 학력 한 줄을 덧보태고자 모이는 사교의 장이였다. 그런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대기업의 번듯한 한자리를 하고 있는 "장" 이상급이었고, 임원들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젊은 친구들은 이미 화려한 외국계 타이틀을 달았거나, 혹은 이미 직장에 다니고 있고 회사 차원의 지원으로 인해 인맥을 쌓기 위해 입학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친구들이다 보니, 그들의 세계에는 골프가 아니면 난 감히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였다. 나처럼, 회사 경력 겨우 1년도 안 되는 수준에 경영대학원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렇게 대학원에서도 허송세월 1여 년의 시간을 외톨이로 보내고 있을 즈음, 나에게도 연애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얻어들은 정보로 혹은 대학원 내외의 소개로 띄엄띄엄 회사를 지원도 해보고 잠시 다녀보던 그 사이, 나름 괜찮은 여성을 만나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한 3개월 만났을까? 여지없이 또 지인 소개로 입사한 회사에서 사업의 어려움을 핑계로 또 나는 백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 소주 한잔에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던 찰나, 나는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통보도 받았다. 낮에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밤에는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본인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처럼 직업관이 확실하지 않고 목표도 없는 사람을 무엇을 믿고 함께 할지 잘 모르겠다는 부분이 이였다.


나는 그대로 소주만 들이켜고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만 끔뻑거리며 이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학원 한 학기를 앞두고 나는 휴학을 하고는 그대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지원으로 떠난 나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영국에서의 생활도 뭐 쉽진 않았다. 유학원을 통해 급하게 수속을 한 학교였고, 학교에 가면 떠는 건 무슨 말인지 그저 눈만 끔뻑이며 기숙사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이곳에는 나처럼 도망온 친구나, 정말 공부에 몰두하는 친구들 다양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지만, 그들 역시도 나보다는 돈이 많은 친구들이다 보니, 영국의 무시무시한 환율과 물가를 고려할 때 그런 사치스러운 생활은 나에게도 다소 버거운 자리였다. 그렇게 영국에서도 나는 유학생활에서 조차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지내야 했다. 졸업 역시도 쉽지 않아 한인사회 좋다는 게 어디냐며 어렵사리 비싼 졸업족보를 구해 간신히 졸업장 정도는 쥘 수 있게 되었다. 유학 가서 변변한 인맥하나 못 얻은 나로서는 어린 시절 개봉동에서 보낸 동네친구들이 하염없이 그리워지던 시기였다.


그렇게 귀국을 한 뒤, 우여곡절 끝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십여 차례에 띄엄띄엄 회사를 다니던 나에게, 스타트업 회사를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심지어 그 회사는 나에게 스톡옵션이란 미끼로 연봉 1억 이상을 불렀고, 나는 여태껏 3-4천 짜리 연봉 조건에서 탈피하여 단박에 1억대의 연봉자가 될 수 있었다. 그 회사는 신재생 에너지 IT 플랫폼이라는 근사한 회사에 입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껏 내가 다닌 회사 중에 가장 그럴듯한 회사였다. 회사 위치도 다들 선망하는 강남이었고, 얼마나 멋진가 '신재생에너지' 나는 역시 영국유학과 대학원이 그저 낭비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덕에 감히 서어서문학과 나온 주제에 이 회사에서 IPO공시 담당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공시담당인 나를 비롯한,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친구들까지 회사 홈페이지에 버젓하게 사진과 나의 이름을 박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만큼 나를 예우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는 기대감에 으쓱하여, 그때 당시 날 차버린 여자친구에게 복수라도 하듯, 결혼정보회사에 당당히 가입을 했다. 홈페이지에도 버젓하게 사진과 이름이 나오는 이러한 우수 인재를 심지어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까지 제안받고 입사한 이 회사가 상장만 하게 되면 내가 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고 무려 그 가치가 약 50억이나 되는 셈인데 정말 나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동산 자산이 약 50여 억의 이러한 능력남을 어떤 여자가 감히 무시할 수 있겠는가 라는 나의 생각이 자리 잡았다. 부모님이 도와주신 내 전세금 4억까지 합하면 나의 자산은 54억, 아 나란 남자 정말 초엘리트란 생각이 들었다.


영업이 하기 싫어 회사를 옮겼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싫어서 옮겼다. 연봉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 옮겼고, 집에서 너무 멀어서 옮겼다. 나의 이직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했고 매우 타당했다. 그렇게 현명한 나의 선택 끝에 이 회사는 나의 마지막 회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럴싸한 IPO준비에 외부 투자자 유치 및 미팅까지 내가 하는 일에 내 어깨는 으쓱해졌다. 어느덧 친구들을 만나도 뻐기면서 당당해졌고 이러한 나의 모습을 이성에게 어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서 주변사람들의 말을 듣고 결혼정보 회사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나를 너무나 환대했다. 화려한 학벌과 유학, 그리고 동산자산 스톡옵션 행사로 취할 미래의 자산 50억까지 나를 담당한 매니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설레발을 쳤다. 나는 그런 모습에 흐뭇한을 느끼면서 후하게 가입금 2200만 원을 질렀다.


이젠 결혼만 하면 내 인생은 앞으로도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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