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의 선택 – 침묵 대신 목소리를 내다
업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8년. 이제는 거의 혼자서도 업을 이어갈 만큼 익숙해졌다. 하지만 나의 나이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았다. 특히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펼쳐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
우리 회사는 영업을 기반으로 한다. 상대하는 고객층도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항상 조금은 다른 시각과 디테일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회사의 광고·마케팅, 홍보 방식은 늘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고객 한 분이 제안을 주셨다. 자신이 운영하는 잡지에 광고를 싣는 건 어떠냐는 것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나는 갑갑하게 막혀 있던 상황이 풀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신난 마음으로 회사에 돌아와 회의실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피드백이 아니라, 내 본업에 대한 지적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네 일이나 해라.”
그 말은 결국 이렇게 들렸다.
“우리는 네가 필요 없다.”
나의 방식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큰 비용이 드는 일이 아니었고, 준 임원으로서 회사의 비전에 보탬이 될 만한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나는 회사에 필요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나만 너무 진지했던 걸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내 안에 남았다.
“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가장 외로울까.”
현재 회사의 방향은 그리 좋은 쪽으로 가고 있지 않다. 시대는 AI로 넘어가고 있다. GPT나 제미나이 같은 도구가 이미 무료로 전문지식을 정리해 주고, 영업적인 사심 없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걸까?
나처럼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는 다들 진보적이었다. 월급쟁이 시절, 새로운 방식을 꿈꾸며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이 되고 기득권을 쥔 순간, 그들의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물론 모든 임원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변화를 고민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다수의 침묵은 생존을 위한 방패로 굳어지고, 결국 조직은 화석처럼 굳어간다.
그럴 때 불현듯 떠오르는 자각.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옳은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동시에 외로움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조직 안에서의 외로움은 곧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깨달음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로또도 사야 당첨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속으로만 읊조린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그래서 선택했다.
“비록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시도했다. 그것은 나의 진지함이 아니라, 나의 최소한의 존엄이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의 방향과 내 가치관이 어긋나는 순간이 잦다. 때때로 충언은 독이 되기도 한다. 침묵이 무조건 비겁한 것도 아니다. 묵인 역시 누군가의 생존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짐한다.
“묵인과 진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내 자리에서만큼은 침묵을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그 선택이 때로는 외로움을 불러올지라도, 그것은 나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