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의 유령

회사에서는 누구나 유령이 될 수 있다.

by 머니페니

싸늘한 방

우리 회사의 회의실에는 유령이 산다.
문을 열면 싸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천장의 낡은 에어컨은 간헐적으로 신음을 토하며 송장의 호흡처럼 쉰 바람을 내뱉는다. 빛바랜 화이트보드에는 지워지지 않은 문구가 얼룩처럼 남아 있고, 오래된 신문더미의 눅눅한 냄새는 바늘처럼 콧속을 찌른다.

회의실 뒤편 장식장에는 누구도 꺼내보지 않는 과월호 잡지만 잔뜩 쌓여 있다. 언제 받았는지 모를 ‘우수업체상’이 먼지를 덮어쓴 채 덩그러니 놓여 있고, 십수 년 전 샘플용으로 남겨둔 싸구려 와인잔과 어울리지 않는 초콜릿 박스가 공간을 장식한다.
모두 예쁘게 포장된 쓰레기들. 그래서 이 방은 늘 무겁고 우중충하다.



투명인간의 방

이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된다.
직급도, 성격도, 목소리도 모두 봉인된다. 회의실에만 기생하는 어떤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듯, 누구든 이곳에 들어서면 ‘비가시성 생물’로 변한다. 그 어떤 시끄러운 인간도 이곳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특히 나는 더 심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누구도 대꾸하지 않고, 대표조차도 내 목소리를 못 듣는 듯 지나쳐 갔다. 내가 보낸 이메일은 늘 답장이 없었다. 내 하루는 마치 물기를 잃은 종이처럼 무미건조했다.



침묵의 의식

매월 초와 말, 모두가 둥글게 앉아 회의를 한다. 하지만 그곳은 대화의 장이 아니라 침묵의 사원에 가깝다. 의견을 내보라 하면 다들 입을 꾹 닫는다. 떠드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고, 때로는 누군가 말해도 맥락은 공허하다.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때 문득 느낀다. 이곳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퇴사한 선배들의 흔적들—탕비실 구석에 버려진 머그컵, 쌓여가는 반찬통, 냉장고 속 주인 잃은 음료수. 그들의 영혼 또한 회의실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점점 공기를 눌러오는 듯했다.




존재의 소멸

흐릿한 의식 속에, 나는 또다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칠판 앞 희미한 실루엣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사람들은 차락차락 자료를 넘기며 집중한다. 하지만 내 앞에는 아무런 자료도 없었다. “왜 내게는 없지?” 손을 흔들지만, 내 목소리는 묵음 처리된다.

자료 없이도 발언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옆자리 팀장과 부딪혔지만, 그는 나를 그대로 통과했다. 순간 깨닫는다. 나는 이미 유령이 되어버렸다.
“아니야, 난 아직 살아 있어. 나 여기 있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쳐보지만, 내 존재는 주변의 무관심에 눌려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회사에는 몸만 남고 영혼은 비워진 좀비들, 흔적조차 사라진 유령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리에 합류하고 있었다.



회의실의 저주

오늘은 더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내 커피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메모해둔 포스트잇은 공중에서 타들어가 재가 되어버렸다. 그제야 확신했다. 이 회의실은 나를 투명하게 만들고, 존재를 지워버리는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원들의 영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들은 잊히는 서러움에 몸부림치며, 내 존재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결국 나는 회의실에서 말없이 앉아 있거나, 아주 가끔 투명해진 손으로 테이블 위 먼지를 털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나는 투명 망토를 두른 채 의자에 체온만 남기고 있다.




남겨진 대화

“이야기 들었어요? 영업 2팀 정 차장, 엊그제 결국 죽었다네. 업무 과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트레스가 원인이래. 젊은데 급성 면역 이상이라니, 참 안타까워. 회사일에 매달려도 문제, 워라밸만 좇아도 문제, 뭐든 적당히 해야지. 자, 커피 다 마셨으면 일어나죠. 저기 구석 커피잔 좀 치우고, 칠판에 붙은 포스트잇도 떼고… 청소도 안 하나? 하여간 빨리들 들어와, 난 먼저 갈게.”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회의실 안, 나는 또다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에필로그

허무하다.
내 존재와 내 이야기가, 회사 테이블 위 흔한 커피잔처럼 대수롭지 않게 소비된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서, 서서히 보어아웃 되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듯, 이미 사라진 채로.
























































이전 02화단순함이란 이름의 감옥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