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란 이름의 감옥 "회사"

튀지 마라, 적당히 해

by 머니페니

나는 늘 일을 곧잘 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요청이 있을 거 같으면 내가 먼저 제안서를 내서 선수를 쳤고, 상대가 원하는 바 혹은 불만 사항이 있을 거 같으면 의례 내가 먼저 에둘러 표현하거나 불만사항을 줄이기 위해 노련하게 해 왔다.


그래, 나는 이렇게 18년을 일했다. 이 회사에서 처음 입사할 때, 나를 뽑고자 앉아있는 멀끔한 신사복 입은 양반들에게 나는 패기 있게 말했다.

"전 이곳에서 뼈를 묻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글 거리는데 진짜로 그랬냐고? 맞다 진짜로 이렇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순간 면접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한 분의 말씀 때문에

"큰일 나 우리 회사 그러면 감사받아 허허"

그리고 나의 입사는 결정되었다.


매사에 열심히였다.

신입사원 연수시절, 가장 많은 질문을 했고 늘 앞자리에 앉아서 경청했다.

메모를 놓치지 않았고 선배들 일하는 일거수일투족을 정말 매의 눈초리로 따라다녔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입사 동기들이 총 22명. 한 기수에 20여 명이 넘는 신입이 한 부서에 배정되기로는 창사 이래 최고 입사인원이라 했다. 나는 그 들 중에서 단연코 눈에 뜨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동기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나는 입사 이래 최단기에 첫 거래를 체결했다.

내가 얄미워서 일까 냉랭하게 도와주지 않는 선배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동기들 사이에서 얼떨떨하게 고객을 만나고 어리바리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 손이 다 떨렸다. 내 기억에 남는 첫 거래였다.

그때 내 기억에 남은 건 제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라 해도 영업회사에선 매출을 올리는 자는 그게 누구든 늘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입사 1달도 안되어 손꼽히는 큰 거래를 진행했고 그 덕에 신입이지만 내 이름을 사내에 많은 임원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질투와 시기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두 번째 계약 정말 공들여서 만든 계약은 클라이언트와의 몇 번의 미팅과 수많은 자료가 오간 끝에 체결한 계약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자축하며 맥주를 마시면서 진짜 좋아 어쩔 줄 몰랐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현재, 계약체결은 나에게 있어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리고 이에 따라 부수적으로 생기는 컴플레인이나 거래계약상 하자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스트레스가 아니게 되었다.

뭐 하루이틀은 골머리 썩지만 이 역시 며칠 지나면 까먹을 정도로 다른 일이 계속 들어왔다.


예전엔 스쳐 지나간 고객들 이름 모두를 기억했다. 지금은 어제 진행한 고객도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많이 무뎌진 건가 아니면 이젠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걸까?


세월이 흘러 18년이 되어 나는 직급은 점점 더 올라갔지만 내 밑으로도 후배 직원들이 와글와글 찼지만 선배로서의 사명감? 먼저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없다.

어린 시절, 퇴근 후 삼삼오오 선배들이 불러서 맥주 한잔 사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향수 같은 시절은 옛 추억이다. 이젠, 집 가기 바쁘다.


내일 또 출근하면 같은 일의 반복 이 일을 지금 얼마나 더 잘 해낼 수 있나? 내가 하는 일의 어떠한 성취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업무의 수치화를 해보기 위해 그간의 나의 업무일지를 모아 포트폴리오도 만들어보고 결과치를 수치화해보려 했다. 그래서 나의 성과를 해마다 결산을 내어 보고 싶었고 그걸 통한 내 성장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포트폴리오 만드는 과정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이상한 시선으로 본 우리 회사 모 여자 과장의 농간으로 인해 나는 졸지에 사내 기밀을 빼돌리려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 부당해고 수순까지 밟아야 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의 이 작은 변화의 기록조차 허용하지 않는 회사의 시스템에 나는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룰도 없는 부당해고에 결국 노무사를 통한 법정 조정을 거쳐 나의 평온을 겨우 되찾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회사에 만정이 떨어지게 된 계기가.

회사는 언제든 망할 수 있는 조직이고 망하게 되는 계기는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내에는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회사에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몇몇 친한 이리 같은 무리들의 험담에 있지도 않은 구설수에 올라야 했고 순수하게 내 업적을 정리하고자 했던 내 의도를 사내 기밀이나 훔치려 했던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우리 회사는 뛰어난 인재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만을 인재라 칭할 뿐이었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을 최고로 추켜세울 뿐이었다. 무분별하게 큰 소리로 사무실에서 직원을 헐뜯고 욕을 해도 어느 임원조차 나서서 중재한 적 없었다.

과거 큰 기업의 형태로 시스템이 있던 내가 입사했던 시절의 회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시스템이 없으니 이곳 황무지와도 같았다.


내가 신입부터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거다. 튀지 말았어야 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가장 큰 실수는 너무 쓸데없이 열정을 쏟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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