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웃기도 해
네가 남겨준 것들이
온몸 구석구석
마음과 무의식 속까지
참 알알이도 박혀있구나!
그날의 슬픔
그때의 감격
그날의 상처
그때의 환희
모두
새겨볼게.
네가
내 노래가 될 때까지…….
신호등 앞에 한 청년이 서 있다. 반바지에 소매 없는 티를 입은 청년은 훤칠한 키만으로도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나 보이는 살갗마다 알록달록한 용 타투가 마치 청년의 옷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전신을 덮고 있었다. 요즘은 타투가 패션 아이템으로 분위기 전환이나 미적 표현으로 보편화되었건만 전신에 타투를 새긴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슨 견디기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측은한 눈길로 그의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된다. 이것만으로 나는 이미 옛날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 일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유는 언젠가 텔레비전 시청을 하는데 유명 연예인이 나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하던 중 젊은 시절 후회되는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가 말하길 철없던 시절 부모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항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는 전신에 타투를 새겼다고 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이에게 자신의 전신에 새겨진 타투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 타투를 지우는 것에 대해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타투는 새기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듣고 많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나는 전신에 타투를 한 사람을 보면 무언가 마음의 불편함을 몸에 표현한 것이라는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를 더욱 적용하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떤 평범한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도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는 기막힌 일들을 듣게 된다. 나 역시 순조롭지 않은 삶을 살며 상처, 슬픔, 아픈 기억의 흔적들을 꽁꽁 잘 싸서 내 마음과 기억 어딘가에 숨기기도 하고, 말하면 터질까 봐 쌓아 두는가 하면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입히게 될까 두려워 묻어버린 채 살았다. 나는 그 일들을 기억조차도 못하고 의식조차도 못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 치유받지 못한 내 감정은 상황마다 말끝마다 쓴 뿌리가 되어 다시 나를 망가트리고 관계를 훼손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그 모든 흔적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내 삶의 재료로 재사용해보기로 말이다. 많은 흔적을 꺼내 직면하고 싸매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겪기도 하고,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 과정을 진실하게 정직하게 마주한 후 다시 곱게 싸매주고 나면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견고하고 좀 더 당당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