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면 나아진다”는 말이 가장 위험한 이유

왜 희망은 때로 독이 되는가?

by GreenT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적인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꽤나 막연하고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천년만년 가는 기쁨도, 슬픔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고난이 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때론 이런 달콤한 말로 포장된 막연한 희망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고통의 크기와
다가올 행복의 크기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의 고통이 끝난 뒤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고통이 얼마나 길어질지, 언제 끝날지,
정말 이 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기에


자신이 몸소 겪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책임한 희망은 종종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독약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마냥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런 막연한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소설 『마지막 잎새』의 존시처럼 말이다.


화가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눕고,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점점 삶의 의지를 잃어간다.


그러던 그녀는

창밖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함께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적으로만 보자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자신의 병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고작 창밖의 잎새 하나에

인생을 맡기겠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고작 그런 것 덕분에
다시 살아갈 의지를 얻는다.


그 ‘말도 안 되는 희망’이
존시의 오늘을 다시 붙잡아 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하나가

다시 하루를 견뎌낼 힘이 된다.


누군가는 토끼 같은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또는 사랑하는 연인을 생각하며,
혹은 반려동물일 수도
게임이나 스포츠같은 취미일 수도 있다.


남들에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때론 누군가에겐
내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진감래 같은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론 ‘근거 없는 희망’조차
우리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막연한 희망만으로는
현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는
수동적인 믿음은
당신의 삶을 바꿔주지 못한다.


설령 상황이 우연히 좋아졌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간절함이나
기도가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라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우연이
당신의 삶에 몇 번이고 찾아올 것이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 믿음은 언제나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빠트릴 뿐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동굴에 갇힌 듯한 기분이라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는 일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지금 시작해 보자.


기도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희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고진감래는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기다림 그 자체를
미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고진감래의 진짜 의미는
고통이 끝나길 바라며
무작정 버티라는 말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으려는 용기를

결코 잃지 말라는 응원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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