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엄마 말대로 했어

친정엄마랑 완전히 다른 나의 살림 방식

by 책하마

초등학교 5학년 무렵, 27평 구축 아파트에 살던 우리 가족은 37평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갔다. 98년도 그 땐 그런 가정이 많았다. 경기도 신도시의 30평대 새 아파트가 1-2억대였던 시절이라, 크게 사치하지 않고 성실히 회사 다니며 저축한 40대 가장들은 무난히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37평 새아파트에 입주하자마자 부모님은 정말 만족해하셨다. 옛날 아파트에서 쓰던 작고 오래된 가구들을 처분하고 새 가구들로 꾸미셨다. 당시 유행하던 양문형 대형 장미무늬 냉장고, 황토색 가죽 쇼파, 엔틱한 스타일의 6인용 식탁, 갈색과 초록이 적절히 섞인 커다란 옷장... 이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가구들보다 1.5배는 커진 물건들이었다. 그에 맞춰 이불도 여러 개, 옷도 더 여러 벌, 냉장고에 식재료도 더 풍성하게... 엄마는 이제야 제대로 갖춘다며 만족해하셨지만 나는.. 집은 넓어졌는데 뭔가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방도 넓어졌다. 옷장과 마찬가지로 초록과 갈색이 적절히 섞인 큰 학생 책상, 이제 어린이에서 막 벗어나는 시기라 좀더 큰 침대 등등. 책상에 서랍장도 여러 개, 쓸 수 있는 공간도 넓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깔끔히 정리하는 능력이 없었고 방은 늘 지저분했다. 옛날 집에서 작은 방은 비록 정리는 덜 돼있어도 공간 자체가 작아 내 물건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넓은 방에서 물건도 많아지니 어디 뭐가 있는지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온전히 관리할 수 없는 공간에 기가 빨렸고, 관리가 잘 안되자 방은 점점 더 너저분해졌다. 넓은 방은 그만큼 사각지대도 많아서 구석구석 더 많은 먼지가 쌓였다.


하루는 엄마가 방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며 못 쓰게 된 물건들은 다 버리고 정리하라고 큰 봉투를 주셨다.

나는 모든 공간을 열어, 안 쓴 지 1년이 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봉투에 버렸다.

각종 간식 껍질과 문구 포장지,

몽당연필과 고장난 샤프, 풀이 묻어 끈적해진 가위, 잘게 조각나버린 지우개,

저학년 때 놀던 그림책과 인형,

색이 바래버린 티셔츠와 고무줄 늘어난 바지,

칠이 벗겨진 머리핀과 다 늘어나서 머리를 묶으면 머리카락이 와르르 흘러내려버리는 머리끈 등등 모두.

그리고 내가 자주 쓰는 물건들만 남겼다. 물건 가짓수가 줄자 서랍에는 1-2가지 물건만 들어갔고, 어느 서랍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서랍에 물건이 많이 안 들어가니 꽉 들어차지 않아 여유가 있어 보기에도 깔끔했다. 테트리쓰하듯 켜켜이 넣지 않고 그냥 툭 넣어도 깔끔한 느낌!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제야 안정감이 들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내가 버린 봉투 속 물건들을 살펴본 엄마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됐다.


"몽당 연필은 왜 버리니, 아직 쓸 수 있는데!

이 낡은 옷들은 보관하고 있다가 잘 때나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 입으면 되잖아?

늘어난 머리끈 그리고 핀은 살 때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머리에는 못 해도 가지고 있다가 과자봉지 밀봉할 때 써!

이 그림책이랑 인형도 얼마나 비싸게 샀는데! 가지고 있다가 사촌 동생들(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오면 줘!

!@#!$%!#^


엄마는 봉투의 거의 모든 물건들이 '언젠가는'쓰인다고 하셨고

그것들을 다시 꺼내서...여유 공간이 생긴 서랍 칸칸에 조금씩 채워 넣기 시작했다. 서랍들은 다시 꽉 차기 시작했고 나는 또 그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엄마는 늘 집에 물건을 여유있게 쟁여놓았다.

네 식구가 사는 집에 꼭 10인이상의 식기세트를 구비해서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손님맞이에 대비했으며

계절마다 이불도 종류별로 구비해 그것 또한 여분으로 구비해놓으셨다.

유행이 한참 지나 촌스러워진 옷들도 언제 입을 지 모른다며 간직하셨고, 아빠도 마찬가지로 세제, 샴푸, 각종 소스나 양념들도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며 몇 세트를 사서 쟁여놓으셨다.

세트로 사야 싸기도 하잖아-하시면서.


어린 시절 그런 경험으로, 엄마아빠처럼 사는 게 맞는 줄 알고 나는 정리를 포기했다. 20대 후반 신혼때까지도, 나는 물건이 적고 공간이 작을 때 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데, 그런 나를 제대로 모르고 난 원래 정리정돈도 잘 못 하고, 물건 위치도 잘 기억 못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며 살았다. 그래서 살림 자체가 귀찮은 일이 돼버렸다. 신혼집을 구하고 결혼해 입주하기 직전까지 엄마는 계속 본인의 스타일로 우리 신혼집의 구색을 맞추려고 하셨다. 나는 중요한 가구 몇 개만 사놓고 그때그때 필요할 때 하나씩 사려고 했는데, 엄마는 하루에 몇 가지 씩 우리 집에 갖다놓으셨다.

이불은 두툼한 겨울 이불이 꼭 몇 개 있어야 하고,

식기는 종류별로 10인 세트를 구비해야 하고,

냉장고는 무조건 커야 하며 각종 냉동식품, 소스, 양념류는 다 갖춰놓아야 필요할 때 바로 쓴다고 하셨다.

집에 화장대도 없으면 어쩌냐고 빨리 갖춰놓으라고 하셨고,

고기와 생선을 구울 수 있는 전기그릴도 정말 유용하다며 구매를 재촉하셨다.

저 모든 물건들을 들여놓자 집은 점점 좁아졌다. 매일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됐다.


막상 신혼집인 소형 아파트는 지역난방이 잘 돼 두툼한 이불까지는 필요 없었고

신혼부부인 우리는 매일 쓰는 그릇 4-5개정도만 썼다.

냉동식품이나 소스, 양념류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밀키트나 반찬을 사 먹었다.

색조화장도 안 하고 기초화장도 로션 하나만 바르는 나는 화장대에 먼지만 쌓였고

고기와 생선을 구우면 전기그릴판을 씻는게 더 번거로워 점점 안 쓰다가 1년도 채 안 돼 애물단지가 됐다.

이거 말고도.. 내가 고른 물건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하다고 신신당부했던 물건들, 그리고 엄마 뿐 아니라 다른 어른들까지 한마디씩 하시며 집들이 선물로 사오셨던 물건들도 마찬가지였다. 셀 수도 없었다. 점점 집은 좁게 느껴지고 너저분해졌다.

딸아이가 태어나고는 더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아이도 태어났으니 30평대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당시는 10년 전이라 20평대와 30평대의 가격 차이가 1억 정도였고, 우리 맞벌이부부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액수였다. 그래서 30평대로 갔는데, 30평대로 가면 좀 덜 너저분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물건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맞벌이 주부 8년 차, 육아 6년 차쯤 됐을 때 곤도마리에님의 미니멀라이프를 접했고,

나에게는 이것이 정말 신세계였다.

불필요한 물건과 가구는 굳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정리를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 감당가능한 물건의 갯수가 그냥 적은 것이었구나.

'설레지 않으면 비워라'라는 곤도마리에님의 메시지를 읽으며 가슴이 설렜다.

버리는 것에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래서 나는, 1년 이내에 사용하지 않은 모든 물건, 가구를 비우거나 중고에 팔았다. 옷 수십 벌, 화장대, 전기 그릴, 진공 청소기, 신발 수 십 켤레, 이불 십수 개, 아이가 자라며 필요 없어진 바운서나 젖병소독기 등등... 엄마처럼 쟁여놓고 언젠간 쓰거나 누구에게 물려주겠지 했던 모든 것들을 없앴다.

그리고.. 당장 사용하는 물건들만 곁에 두었다.

그러자 모든 물건이 내 시야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리가 수월해졌다. 물건 관리도 깔끔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정라도 청소도 소질이 없다고 여겼던 내 자신인데,

그 무렵부터 어쩌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내가 정말 깔끔하고 정리를 잘 한다며 칭찬하곤 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나 깔끔한 사람이구나. 이제까지 내 살림 스타일에 맞지 않아서 잘 못 했던 것이구나.

살림이 귀찮은 것이 아니라, 점점 재미있어졌다. 정리도, 청소도. 꽤 할 만하고 때론 재미있다!


그렇게 되니 30평대 아파트가 휑-해졌다. 빈 공간이 지나치게 많이 생겼다. 커다란 붙박이 옷장도 남아 돌았고, 짜여진 서랍장도 화장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빈 공간에 먼지가 쌓였다. 그리고 난방비와 전기세는 왜 이렇게 오르는지- 그러자 이전에 살았던 20평대 아파트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재작년무렵, 24평 구축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왔다.


친정부모님은 난리가 났다. 왜 그렇게 좁고 낡은 집으로 이사를 갔냐며, 넓고 깔끔한 집 놔두고 사서 고생한다며 너무 속상해하셨다. 멀쩡한 물건을 죄다 없앴다는 푸념과 함께- 하지만 몇 번 우리 집에 와 보신 후에는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이 작은데 작은 느낌이 별로 안 나네? 그럭저럭 괜찮은데? 오히려 더 깔끔하구나."


지금 우리 집에는 붙박이 옷장도, 화장대도 없다. 붙박이 옷장 안에 있던 몇 벌의 옷들은 행거 몇 개로 충분히 보관중이다. 침구도 여름 이불과 사계절 침구 각각 한 세트씩만. 식기도 컵, 반찬그릇 등등 모두 합쳐 30개가 채 되지 않는다. 구축 아파트 낡은 수납장에 쏙 들어가고도 남는다. 그래도 우리 세 식구 밥 해먹기 충분하다.


우리 친정엄마랑 나의 살림 방식 중 정답인 것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타고난 성향에 맞게 꾸려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처럼 미니멀라이프가 좋은 사람도 있고, 우리 친정 엄마처럼 맥시멀라이프로 여유분을 갖추셔야 안정감을 느기는 분들도 있다. 내 살림 방식을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신혼집부터 낭비 없이 쭈욱 내스타일대로 꾸몄을 걸. 하지만 내 가정을 꾸리며 오랜 세월 공부했기에 나만의 살림 방식도 깨달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이제라도 내 살림 방식을 찾아나가는 중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내 취향대로 가꿀 살림을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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