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따라하다가 월세까지 받게 된 과정-3
30평대 새 아파트로 이사하다
신혼집 24평 구축 아파트에서 살 때, M과 나는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
그녀 또한 내 또래의 신혼부부였다. 함께 임신을 준비하며 급속히 친해졌다. 같이 맛집과 카페를 다니며 음식 취향도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해 즐거웠다. 이야기가 잘 통하니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임신과 출신 이후 M은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 밖에서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아주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한 덕분에 아기띠를 하고 유모차를 끌고 쇼핑센터에서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조금 크자 서로의 집을 오가기 시작했다. 단 둘이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것이 버거워 한 집에서 모이게 되는 다른 아기엄마들처럼, 우리도 어느새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아기를 데리고 서로의 집을 오가기 시작했다.
M의 집은 40평대의 넓은 아파트였다. 게다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집을 멋지게 꾸며 사진으로 담아 SNS에 올리기를 즐겼다. 본인의 집에 우리 모녀가 올 때마다 집 인테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큰 쇼파, 커다란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 커다란 거실스탠드...자꾸만 그 집이 익숙해지자 '멋진 집이 되려면 이렇게 꾸며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인테리어 감각이 남달랐던 M의 집에는 가구들과 소품들이 조화를 이뤄 참 예뻐보였다.
그러던 와중 30평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집이 넓어지고 수납할 곳이 많아지자 여유공간이 많아졌다. 이 공간을 멋진 가구와 소품들로 채우고 싶어졌다. M의 집에서 본 대로 큰 가구, 예쁜 소품을 사기 시작했다. 커다란 붙박이 옷장, 4인용 커다란 쇼파, 커다란 아기옷장, 넓은 거실장, 오븐과 에어프라이어, 예쁜 원목의 유아용칠판, 장난감 등등.. 30평대의 넓어진 집은 공간을 차지하지만 보기에 예쁜 물건들로 다시 채워졌다.
새 보금자리에 예쁜 물건들을 배치하니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나도 M처럼 인테리어를 멋지게 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M과 나는 기본적인 성향이 다른 사람이었다.
M은 넓은 집에 인테리어소품을 가득 채워도 그것을 모두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 정리와 청소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일들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취미가 청소라니까? 청소하다보면 마음이 개운해지고 힐링이 돼"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1분1초가 아까운 워킹맘이었다. 퇴근하면 딸아이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고, 딸아이가 잠들면 그 시간에 운동하거나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집 정리와 청소가 즐겁지 않았다. 나에게는 숙제처럼 여겨지는 하기 싫은 일이었고, 그런 일들 때문에 운동하고 독서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점점 이 인테리어 소품을 잘 정리하고 넓어진 집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 힘겨워졌다.
24평에 살 때에는 작은 욕실 한 개만 잠깐 청소하면 그만이었지만 30평대 아파트는 욕실도 두 개였다. 게다가 큰 욕실에는 욕조까지 있어서 욕실청소가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평수가 넓어진 만큼 주방, 방, 거실도 넓어져 이 공간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하고 멋지게 꾸미기는 커녕 집에 점점 먼지가 쌓여가고, 욕실에는 물때가 끼기 시작했다. 지저분해지는 집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월 20만원을 들여 주 1회 가사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게 됐다.
가사도우미 이모님 덕분에 집안의 먼지와 물때는 없어졌다. 하지만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까지 정리하고 관리해주시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넉넉한 크기로 짜여진 붙박이장 옷장에 옷이 꽉 채워졌지만 막상 입을만 한 옷이 없었다. 큰 맘 먹고 산 옷이 한두번 입으면 어딘가 모르게 추레해지고, 처음 샀을 때와 다르게 내 얼굴을 칙칙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화장대에 가득한 악세서리도 마찬가지였다. 생각 없이 산 귀걸이들은 한두번 착용하면 싫증이 났다. 막상 매일 착용하는 것은 아주 작은 진주알 귀걸이 뿐이었고 나머지는 잘 손이 가지 않아 먼지가 쌓였다. 빗도 여러 개, 머리핀도 여러 개였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아 화장대 서랍 안에서 갈 곳 없이 굴러다녔다. 여기 붙어 있던 머리카락들도 함께.
화장대 서랍 뿐 아니라 위에도 자주 먼지가 쌓였다. M을 따라 산 커다란 책장과 거실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들까지 주기적으로 닦아줘야 하나 스트레스가 쌓였다.
거실은 대체 무슨 기능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거실 서재를 만들고 싶어서 TV 대신 책상, 책장은 놓았는데, 거기에 딸아이의 유아 책걸상, 미끄럼틀, 칠판까지 추가되자 여기가 서재인지 키즈카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딸아이가 잠자는 시간에 나만의 저녁시간을 거실 서재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었으나, 산만한 거실에서 도무지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근데 그 때는, 왜 이렇게 쉬는데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질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점점 나의 집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휴식처가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너저분한 곳이 되어갔다. 지금의 집은 분명 전혀 좁지 않은데, 수납할 공간도 넉넉해 오히려 남는 공간도 있고, 사놓은 가구와 소품들도 분명 예쁜데, 정말 M처럼 40평대는 돼야 그런 느낌이 나는건가? 하지만 40평대까지 집 평수를 늘릴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집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던 중..
모두가 강제로 각자의 집에 갇힌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