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일까?라는 추측을 하고 바로 병원을 가서 최종적으로 임신을 확인했다.
내 인생에 아이가 생긴다니? 이게 맞는거야 ? 내가 아빠가 되는 건가?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가 본 산부인과에서 내가 처음으로 본 모습은 자매로 보이는 두 성인이 서로를 안은채 우는 모습이었다. 그 당시 추측컨대 유산으로 인한 아이의 상실로 위로를 서로 해주는 모습이였꺼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2015년 첫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출산 한달 전까지 열심히 직장에서 일을 한 만큼 건강하였고 아이 역시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첫째 아이가 너무나 건강하게 태어났기에 둘째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둘째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양가 부모님, 주변 지인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지금 생각하면 경솔했다. 들뜬 마음에 내 감정에 너무 충실한 행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몸이 뭔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로 집으로 가서 아내와 첫째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산부인과로 갔다.
아내는 진료실로 들어갔고 나는 진료실 밖에서 딸과 함께 아내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날따라 어린 딸은 때를 심하게 부리고 칭얼거렸다. 병원에 사람이 많아서 나는 아이를 계속 달랬지만 급기야 바닥에 누워서 때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그런 딸을 내가 달래서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는 순간 진료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왔고 아내의 얼굴이 내 시야에 슬로우 비디오처럼 들어왔다.
아내의 눈은 부어있었고 두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직감했다.
“잘못되었구나.”
병원에서는 따로 수술을 할 필요는 없고 약국에서 약처방을 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의 경솔한 말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오는 결과가 되었다.
그것은 다시 사람들에게 둘째가 태어나지 않음을 알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이야기였다.
부모님, 주위 사람들 모두 아내를 잘 위로해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이야기를 했다.
“아마 아이가 태어났으면 아들이였을꺼에요, 아이가 스스로 태어날 힘이 없어 그런 결과가 나온거에요. 그러니 부모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세요.”
자책?
자책을 안할 수가 없다. 모든 게 내 잘못처럼 느껴쪘다.
그날 밤 아무도 없는 아파트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면서 내 눈에서 눈물이 났다.
아주 작고 미약했던 존재지만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맺을 수 있었던 존재였을텐데.... 그 존재에 대해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둘째를 임신했고 그렇게 건강하게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두 아이 모두 지금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세상에 남 일은 없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쁜일! 슬픈일! 모두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혹시 나와 같은 상실감을 겪고 힘든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자책하지마시라! 그리고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