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호 Oct 13. 2022

소유

내 블레이저가 어디 갔지?


비행기에 앉자마자 문득 든 생각이다. 분명히 빠진 것 없이 모두 이민가방을 다 쌌다고 생각했다. 근데 가장 소중하게 아껴왔던 비싼 블레이저를 옷걸이에 가지런히 놓고 온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나는 거의 운 좋게 라스트콜에 간신히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어 기뻤지만, 동시에 좌석에 앉자마자 3백만 원이 넘는 자켓을 놓고 온 것에 대한 무거운 자책감도 동시에 느껴야 했다. 


비행기의 출발 예정시간은 새벽 5시 20분쯤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새벽 2시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까지 운전해서 3시까지는 여유 있게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5년 동안 미국에서 부지런하게 사 모아온 물건을 모두 처리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촉박했다. 나름대로 한 달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 막상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미련을 못 버리고 고이 한 곳에 모셔놨던 내 탓이 컸다. 결국에 모두 내다 버릴 것을 왜 미련하게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을까.. 물론 지금 생각해도 버린 것들이 아깝긴 하다. 한 번도 안 쓴 고급 그릇들, 새 박스에 담긴 위스키, 새 박스에 고이 모셔놓고 한 번도 안 신은 나이키 신발들, 택도 안 뗀 새 옷들... 차마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기부를 하거나 미리 판매를 했음에도 그전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워낙 많았었기 때문에 결국 모두 쓰레기장으로 쑤셔 넣어야만 했다. 이 모든 사태는 시간만 더 지체하게 만들 뿐이었고, 결국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조급함'과 '서두름'이라는 화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약속시간이 정해진 날에 이런 것들은 결코 그 결말이 좋지 않다. 내가 자켓을 놓고 온 것처럼...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느꼈다. 애초에 안 쓸 것 같거나, 써도 한참 나중에 쓸 것 같은 것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 '언젠가 쓰겠지..' 하고 1년, 2년 가다 결국에는 이사하기 직전에 99.9% 버려지게 될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쓸데없이 물건을 사는 습관도 절대 가져선 안된다. 우연히 백화점에서 봤거나 인터넷에서 본 것들 중에 '이거 있으면 나중에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안 사는 게 좋다. 그것도 나중엔 쓰레기가 되고 결국 스스로 돈과 시간만 낭비할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거의 100%에 가까웠다. 이번 계기로 살면서 가장 많이 버려봄으로써 필요 없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행동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갖고 있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관리하고 다루자.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결국 버려지게 되어있다.


작가의 이전글 악플러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